작은 딸과의 대화
2007. 09. 11
발신 : 아빠
수신 : 작은 딸
제목 : 진짜 가을이구나!
엊그제까지도 더워서 난리 쳤는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니 세월 참 빠르지? 이슬이도 2학기 맞고 그러다 보면 고등학생이 되고 하겠지. 아빠는 이슬이 맘 잘 알아. 뭐가 힘든지도 알고. 그래도 우리 이슬이는 늘 엄마 아빠 생각하고 언니와도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정말 착하고 따뜻한 맘을 갖고 있어.
할아버지는 어떠셔? 이슬이가 생신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렸어? 90살이니 정말 꼬부랑 할아버지네. 술 좀 그만 드시고 성질도 죽이고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가셔야 할 텐데... 할아버지 떠올리면 할머니가 더 생각나 아빠는. 너 3살 때 돌아가셨잖아. 이슬이 그때 원자력병원에 할머니 병문안 갔던 거 기억나? 할머니는 고생 진짜 많이 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빠 맘 속에 늘 있어. 아마 예슬이 이슬이도 엄마 아빠 늙어도 늘 맘 속에 기억하고 사랑할 거야. 우리 착한 딸들이니까.
아빠 한국 가면 언니 혼내 줄게. 한국 돌아가면 아빠랑 같이 자자. 아빠가 맛있는 것도 많이 해줄게. 이슬이 힘들고 짜증 나는 일 있어도 아빠 기다리며 참고 웃으면서 재밌게 공부해. 그래, 아빠는 이슬이 믿어.
안녕 우리 이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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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내내 언니와 한 방에서 지내며 작은 딸은 외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3 언니 눈치를 보는 것이 짜증 났다. 당시 방이 두 개인 작은 아파트에서 큰딸과 작은 딸은 한방에서 지냈다. 책상을 붙여놓았으니 예민한 성격의 작은 딸은 언니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거실에 나와 있곤 했다. 중국에 오기 전 책상 사이에 나무판자로 칸막이를 세웠지만 크게 효과가 없는 듯했다. 넓은 평수,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 작은 딸의 방을 따로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 당시 23평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도 재테크에 둔했던 나에겐 행운이었다. 지나고 보면 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두 딸은 서로 너무 좋은 친구가 되었다. 번듯한 직장에서 사회생활 잘하는 큰딸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작은 딸의 작업에 많은 조언을 주며 깊은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작은 딸이 작가로서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텐데 큰딸이 있어 맘이 놓인다.
PS : 중국에 혼자 공부하러 와서 아내와 두 딸이 많이 생각났다. 하지만 귀국 후 불안한 미래에 답답함이 밀려올 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72살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암을 발견하고 석달을 못넘겼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권하진 않았다. 어머니도 원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에게 순종하듯 어머니의 뜻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나는 지금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맘이 무겁다. 한량인 아버지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6년 뒤면 내 나이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의 나이가 된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오래 못 살 거 같다던 아버지는 90살 생일을 보내고 요양병원으로 옮긴 후 5년을 더 사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30년도 넘게 사시다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를 무척 미워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 죽어라 죽어라 하면 더 오래 산다 했던가. 내가 그런 맘이어서 그런지 아버지는 참 오래도 살다 가셨다. 불쌍한 어머니가 생각나면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함께 떠올랐다. 그때마다 아버지처럼 살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자식에게 본이 되는 아버지가 되자고 했다.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되자고 했다.
나는 비록 맘속이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찼지만 어린 두 딸에게는 그런 맘을 표출할 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거둘 나이도 되었건만 여간해서 그래지지가 않는다. 조금 무덤덤해졌을 뿐이다... 미워했던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아 살아서 그런 건지 그나마 두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아버지가 된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