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생활의 일부분이 된 나에게 날씨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래도 가을이 달리기에 최고 좋은 계절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선한 바람에 맑고 높은 하늘, 봄 날씨와 달리 습도가 없는 청명한 날씨는 달리는 두 다리를 더 가볍게 만든다.
지겹게도 더웠던 이번 여름도 가고 아침저녁에는 선선한 바람까지 부니 탄천에 달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나는 올해 그 더운 여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름 달리기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온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그만큼 도전의 희열은 강열하다. 나는 가끔 35도의 한낮 불볕더위에도 뛰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더위에 쓰러져 죽는다며 말렸다. 그럼 나는 5km만 뛰고 온다며 아내의 손을 뿌리치곤 했다. 뛰러 나가면 어찌 5km만 뛰겠는가. 불볕더위라도 최소 기본 거리는 뛰어야 마친 느낌이 드는 걸. 불볕더위에서는 몸의 체온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평소 잠실 방향이던 코스를 탄천 분당 방향으로 뛴다. 중간에 공원 급수대가 있기 때문이다. 급수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정신없이 마시다 보면 1리터? '끄억' 트림을 한 후 다시 달린다. 여름 달리기의 진짜 맛이다. 나는 일상에서 이런 극한의 도전으로 체력과 함께 젊은 마인드를 유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여름이 지나면 달리기 좋은 계절이 오지만 불볕더위 달리기의 아쉬움도 남는다.
가을이 오면 내년도 사업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퇴직한 지도 꽤 지났으니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인생에서의 내년을 준비하는 맘은 여전하다. 올 한 해는 성남시청 소속의 문해교사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6년 내년을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해외마라톤대회 참가다. 우선 아시아 지역(해외마라톤 공식 참가는 해외에서 살던 시기 중국 상하이 마라톤, 캄보디아 씨엠립 마라톤, 앙코르와트 트레일런128km가 있었다). 중국, 일본, 태국 중 어디로 갈까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데 아침 일찍 열어 놓은 창문으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볼을 스치며 빨리 탄천으로 나가라고 재촉한다. 그래! 해외마라톤 참가하려면 돈도 꽤 드는데 좋은 기록으로 좋은 추억 만들어야지.
올해부터인 거 같은데... 한번 뛸 때 거리가15km로 늘어났다. 뛰는 김에 조금 더 뛰자며 반환점을 뒤로 두었다. 거리가 어떻든 6분/km을 넘기지 않겠다며 페이스를 유지하며 뛴다. 그렇게 뛰다 보면 대개 05:40/km. 이 기록으로는 하프코스 두 시간이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조금 빨리 달리기도 하고. 이런 연습기록은 실제 대회에서 하프코스 대략 1시간 55분으로 나타난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1시간 50분 이내가 되기도 하고.
꾸준한 달리기에 계절은 큰 영향이 없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나는 비록 시니어지만 굳은 머리가 아닌 말랑말랑한 두뇌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배워보려는 자세를 갖고자 나 자신과 싸우며 달린다. 설렁설렁 달리는 건 신체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도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은 달린 기록으로 생생히 표현된다. 매번 뛸 때마다 힘들지만 나는 오늘도 즐거운 싸움을 한다.
뛰고 나니 땀에 옷이 다 젖었다. 샤워를 먼저 할까 하다 커피숍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을 마시며 멍 때렸다. 좋은 계절과 함께 정신이 맑아짐을 만끽한 가을아침의 달리기였다. 내가 달리고 또 달리는 이유는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