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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웃고 울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쉽다

2025 손기정평화마라톤 참가

by 김쫑

올해도 다 갔다.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지만 열심히 잘 살았다고 나를 칭찬하고 싶다. 31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58살에 퇴직하여 바로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2년간 캄보디아에서 근무하고 돌아와 60대를 어떻게 잘 보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며 사회적기업진흥원의 경영컨설턴트로, 사회적기업의 인턴으로, 성남시청의 문해교사로 다양한 일을 하며 60대 중반을 넘겼다. 내년도 다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70살까지는 사회 속 일원으로 함께 있고 싶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 고민을 할 때마다 나는 마라톤을 하나의 job으로 생각하며 안위한다. 퇴직 후 잠깐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풀타임 근무를 한 적이 있지만 시간에 매달려 퇴직 후 삶이 팍팍해지는 걸 느껴 그만두었다. 달리기를 하며 나만의 생활 루틴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퇴직이유 중 하나였다. 달리기는 그렇게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한 해 마무리나 시작을 마라톤으로 시작하며 기록을 의식하는 건 그 안에 어떤 결심을 담고자 하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손기정평화마라톤 참가는 나에게 도전의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하프코스 최고 기록은 2023년 기록한 1:45:02. 이 기록은 1km를 5분 1초에 달린 기록이다. 50대 초반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여 10년 전 상하이마라톤 하프코스에서 1시간 57분에 뛴 기록에 비하면 나이는 먹는데 장족의 발전을 했다. 풀코스 마라톤 기록 욕심을 버리고 하프코스 스피드를 염두에 둔 것은 나름 내가 시니어 부문에서는 괜찮은 기록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km를 5분 안에 뛰는 것이 간발의 차이로 힘들곤 했다. 이번 대회 참가 전 나의 목표는 1시간 43분이었다. 1km를 4분 55초에 달리는 것이다. 몇 초 당기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달려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어려운 지. 3주 전 연습주에서 나는 1km를 5분 3초에 뛰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대회에서는 연습 때보다 기록이 좋기 때문에 생애 첫 기록 경신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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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고양시종합운동장은 참가자들로 빼곡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의 대회 참가는 2015년 상하이마라톤대회(참가인원 3만 명) 이후 처음이다. 하프코스 참가자들은 대략 6,7천 명? 참가자가 너무 많다 보니 짐을 맡기는 데도 한참 걸렸다. 화장실 줄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래도 화장실은 갔다 와야 해서 줄을 섰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출발 15분 전. 나는 후미에 섰다. 이 많은 참가자들이 어디쯤에서 사이가 벌어져 편하게 달릴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1km 정도 지나면 길게 줄이 늘어져서 나만의 페이스로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오산이었다. 21km 내내 엄청난 인파와 함께 계속 뛰어야 했다. 그만큼 잘 뛰는 참가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출발해서 3km 정도까지는 앞으로 치고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제2 자유로를 통제하고 달리는 코스는 지하도가 많아 업다운이 심했다. 그래도 나는 초반 5km까지는 1km를 5분에 달리고 있었다. 기록에 대한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반환점을 돌면서도 지친 두 다리가 느려지지 않게 힘껏 발돋움을 했다. 남은 10km 조금만 속도를 내면 1시간 45분 안에 결승선을 통과할 거 같았다. 같은 코스를 돌아오는 길인데 업다운 지하차도 오르막에 힘이 부친다는 걸 느낀 건 16km 지점부터였다. 그전에 이미 나는 05:06/1km 속도로 두 다리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1시간 45분은 물 건너갔구나. 그러면서 1시간 50분은 넘기지 말자고 했다. 하프코스 1시간 50분은 내가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목표 기록이다. 고양시종합운동장이 저만치 보인다. 2km 남았다. 두 다리가 매우 지쳐 쉽게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피드가 현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달리면 19km까지 달려온 기록이 무의미하게 기록이 쭉쭉 빠진다. 2015년 첫 하프코스 출전 상하이마라톤대회에서 18km 지점부터 잠깐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걷고 있지 않다. 더 뛰자며 힘을 냈다. 그렇게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05:13/1km. 2,3km 남기고 현격히 스피드가 떨어지다 보니 이런 기록이 나왔다. 결국 지구력이 문제였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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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3.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기록 경신을 과제로 두었다. 그만큼 내가 할일이 있다는 말이다. 달려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록은 좋은 자극제가 된다. 나에게 하프코스는 2시간이 아닌 1시간 50분이 지켜야 할 기록이다. 그걸 23초 초과했다. 기록을 당기지는 못하더라도 이 기록을 넘기지는 말아야 한다. 기록은 내게 앞으로 더 많이 연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는 시니어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많다 보니 결승선까지 참가자들이 몰려서 달렸다. 그만큼 경쟁자들이 잘 뛰었다는 얘기다. 문자로 온 멋진 기록증을 다운로드 받아 저장했다. '한 해 마무리 잘했다 김쫑아~' '내년 1월 오사카마라톤으로 2026년 활기차게 시작하자'

2026년 1월 25일 참가하는 오사카하프마라톤이 기대된다. 사실 나는 이번 대회 기록 경신을 위해 나름 스피드 훈련도 하며 준비했다. 내년 1월 오사카마라톤은 제한시간이 2시간 10분으로 타이트하기 때문이다. 건타임(Gun Time)으로 6천 명의 참가자들이 빠져나가는 걸 감안하면 5분 정도는 더 당겨서 생각해야 한다. 특히 겨울 일본에서의 대회기 때문에 완주를 목표로 하더라도 1시간 50분 안에 들어오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 1시간 45분 이내를 목표 삼았던 것이다.

실망스러운 기록이지만 한 해 마무리로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을 준비하면 된다. 2026년 1월 25일 오사카마라톤은 다시 활기차게 시작하는 한 해로 나를 만들어 줄 것임을 확신한다. 앞으로 두 달 남은 기간은 건강한 정신과 체력을 유지하며 내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이다. 오사카마라톤을 기다리며 그 안에서 꿈과 희망을 본다. 내가 내일도 달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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