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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드밀에서 장거리 달리기

하프코스 달리기

by 김쫑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꾸준히 달린다는 건 매우 어렵다. 바쁜 일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힘들게 달린다는 것에 동기 부여가 쉽지 않은 것이 더 큰 원인이다. 달리면 건강에 좋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힘들게 뛸 마음의 준비는 없다. 뭐 건강이 나빠져 당장 죽는 것도 아니니 이해는 된다.

마라톤 모임에 모이는 런너는 두 부류가 있다. 달리기를 취미로 하며 건강도 챙기겠다는 부류와 독하게 맘먹고 꾸준히 달리며 기록을 향상하고 나중에 대회도 한번 참가해 보겠다는 부류(건강은 이렇게 달린 결과로 당연히 얻어지는 거라고 믿음).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많은 모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러닝 참여자들의 참여가 들쑥날쑥이고 달리는 동기부여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 부류 런너들은 기록이나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달리고 싶다는 거다. 굳이 힘들 게 뭐 이렇게 까지 뛰어, 한다. 편하게 달리며 단단한 몸을 만들 수는 없다. 장거리는 더더욱 뛸 수 없다. 건강은 설래설래 운동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닌 걸.. 그래서 마라톤 클럽을 운영할 때는 달리기에 대한 확실한 동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제대로 운영된다. 기록이나 연습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 말이다. 조금 힘들지만 운동 시간을 즐기며 꾸준히 달리다 보면 (보통의 성인 남자 기준/두 번째 부류의 사람/중장년 포함) 잘 못 뛰던 사람도 06:30~07:00/1 km 뛸 정도는 된다. 처음엔 5km도 헉헉대다가 나중엔 10km도 뛰게 된다. 오늘 목표거리는 정한 시간 내 들어온다. 아무리 힘들어도 걷지 않고 달린다, 는 마음 가짐이 달리기 입문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다.


겨울에는 트레드밀에서 자주 뛰는 편이다. 트레드밀에서 걷거나 천천히 뛰는 사람들을 보면 운동할 바엔 조금만 더 세게 달리면 느낌이 다를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자기만의 운동 스타일이겠거니 한다. 요즘 TV에서 달리기 관련 화면이 많이 보여서 그런지 아파트 스포츠센터 트레드밀 25개에 자리가 없지만 헉헉 거리며 달리는 사람은 없다. 러닝머신이 아니라 워킹머신이 대부분이다. 트레드밀에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면 로드러닝에서와 같은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트레드밀 속도를 10에 놓으면 6분/1km. 11은 5분 30초/1km. 12는 5분/1km. 나는 12 이상에 놓고 달릴 때 숨이 가빠진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참고 달린다. 이때 심박수는 160~180 수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힘들다고 멈춘다. 하지만 의사들은 말한다. 가끔은 혓바닥이 나올 정도로, 숨이 멎을 정도로 뛰어야 혈액순환에 좋다고. 몸에 혈류가 빠르게 흐르니 혈관 속 고인 노폐물도 강한 피의 흐름에 씻겨 나가나 보다. 그리고 달릴 때 뇌에서 세포가 만들어진다고도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을 참고 달린다. 그렇게 달린 뒤 희열은 내가 왜 달리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오늘은 드레드밀에서 하프코스를 뛰기로 작정했다.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 벨트 위 러닝이라 중간에 멈출 수 없으므로 물도 미리 두 컵 마셨다. 목표는 2시간 이내. 달리기(마라톤)를 진정으로 시작하려는 사람은 뛸 때마다 매번 뛰는 거리와 시간을 정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뛰다 걷다 하는 사람들처럼 뛰다 힘들면 그만 뛰는, 이런 달리기는 안 된다. '오늘은 몇 km를 몇 분 안에 뛴다'라고 정확히 정하고 뛰어야 한다.

나의 오늘 결정은 트레드밀에서 21.1km를 두 시간 안에 뛴다는 거. 평소와 같이 경사도를 1.5로 올린 후 계산을 해서 속도를 입력하자 트레드밀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3km는 속도 9,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시간이다. 이렇게 달리니 20분. 바로 10.6으로 올렸다. 페이스를 찾아 달렸다. 그렇게 11km를. 총 14km. 이쯤 되면 그만 뛰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다음에 뛰고 오늘은 여기까지? 이런 유혹이 매번 나를 힘들게 한다. 누구나 힘든 건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유혹을 이겨내며 달리기를 통해 많은 걸 얻었다. 내가 오늘 트레드밀에서 21km를 꼭 채워 달려야 하는 이유다. 이제 나는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트레드밀에서 뛰는 건 주의를 요한다. 집중해야 한다. 속도를 높이면 더 그렇다. 로드러닝에 비해 외로움이 더한 것이 트레드밀 러닝이다. 나는 이런 때 나만의 비법이 있다. 시야가 탁 트인 자리에서 뛰는 것이다. 밖의 경치를 보며 마치 로드러닝하는 것처럼 탄천을 달리는 시뮬레이션을 하며 뛴다. 15km니까 여기는 탄천변 분당 서현에서 턴해서 모란을 지나는구나 이렇게. 그리고 또 한 가지. 속도가 올라가면서는 벨트 중간에서 약간 앞으로 가서 달린다. 그럼 자연스럽게 자세는 6시 3분의 형태로 약간 숙이는 형태가 되어 안정적인 러닝이 된다. 11.5에 놓고 19km까지 달렸다. 이제 남은 거리는 2.1km. 매번 트레드밀 러닝 때와 같이 12.5에 놓고 마지막을 달렸다. 두 다리가 무겁고 잘못하면 다리가 벨트에서 이탈할지도 모를 정도로 지쳐있으니 극도로 조심하며 달려야 한다. 시간은 1시간 56분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 두 시간 안에 들어왔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는 아무리 헐떡거려도 죽지는 않는다. 내가 두 시간을 달리는 동안 25개 움직이는 트레드밀 벨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뀌어 오르고 내렸다.

격한 운동을 통한 만족감에는 그만한 고통이 수반되고 그 결과는 한계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궂은 날씨 덕분에 나는 오늘 실내에서 달리며 하프코스 완주했다.

1시간 59분을 55cm 벨트에 몸을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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