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의 대화
2007. 11. 13
발신 : 큰딸
수신 : 아빠
제목 : 아빠! 사랑해요!!
아빠!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에 이렇게 메일을 보내네요ㅎㅎ
저 예슬이예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여기는 벌써 겨울인 것 같아요. 너무 추워요 ㅠㅠ
아빠가 보내주신 메일 잘 읽었어요. 아빠가 걱정하시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답니다. 저도 사실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 수능은 잘 보겠죠!! ㅋㅋ
학원에 의존하는 애들보다는 성적이 잘 나올 거예요. 암튼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혹시 성적이 낮게 나오더라도 스트레스 많이 받지는 않을 거예요~ ㅎㅎ
아빠! 추우니깐 몸조심 하시구요~ 1월에 만나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아빠 사랑해요!!
예슬 올림~~
>> 큰딸은 뭐든지 알아서 잘했다. 그래서 기대도 컸던 게 사실이다. 공부를 꽤나 잘하다 보니 늘 잘 잘할 거라는 주위의 기대에 많은 부담을 느꼈을 텐데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빠듯한 살림을 하던 그때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아 가계 경제에도 큰 도움이 주었다. 편지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큰딸의 어려움을 이해하기는커녕 당연히 좋은 결과만 기대했던 생각 짧은 아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중3인 큰딸의 글에 수능 얘기가 적혀 있어 난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적잖이 놀랐다. 아마도 내가 외고 진학를 말하며 한참 뒤의 일인 대학 얘기도 꺼낸 게 틀림없다. 이런 아빠였다니 ㅠㅠ. 그래도 큰딸은 아빠를 위로하며 의젓하게 글을 마무리 했다. 멀리 혼자 나와 공부하는 아빠를 더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딸은 나보다 낫다
PS : 이 글을 읽을 때가 귀국을 두 달 정도 남기고였다. 3월에 출국하여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당시 나는 귀국 후의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느라 인터넷을 뒤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불안감은 자녀들의 미래와 연결되어 가정 내 불안감을 총체적으로 고조시키곤 했다. 내가 불안한데 자녀들마저 잘 안된다면 하는 불안감. 믿고 지켜보면 됐을 것을... 지금 큰딸은 가정을 꾸리고 내로라하는 회사에서 직장 생활하며 꾸준히 자기 계발에 힘쓰고 있다. 내가 보기엔 큰딸은 변화하는 시대에 리더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공부하며 작가로 활동하는 작은 딸과도 많은 걸 토의하며 언니로서는 물론 작은 딸의 작가 세계에 도움을 주는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어 너무나 고마운 존재. 두 딸의 어린 시절 내가 보낸 편지가 성장에 보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를 통해 다시 꺼내 읽는 편지를 함께 보며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행복을 느끼고 있다. 퇴직 후 내가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을 때 자문을 준 사람이 큰딸이었다. 문학적으로 토의가 필요할 때 내가 찾은 사람이 큰딸이었다. 작은 딸의 예술세계와 나의 문학세계에 큰딸의 비평과 조언은 큰 힘이 되고 있다. 아빠보다 나은 큰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