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지간. 친구같은 아빠가 되었다

작은 딸과의 대화

by 김쫑

2007. 12. 5

발신 : 작은 딸

수신 : 아빠

제목 : 답장이 늦어 죄송해요!!


아빠! 드디어 시험이 끝났어요. 시험에 집중하느라 생일편지 읽고도 답장 못 보냈어요. 시험은 개판이지만 그래도 힘든 과정을 마쳤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아요.

어제는 또 큰 소동이 있었어요 후~~ 정말 힘들 때가 많아요. 아무튼 그래요 ㅎㅎㅎ

저는 이만 학원에 가야 해서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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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글에 알 수 없는 내용이 있으면 신경이 무척 쓰였다. 아내와 두 딸만 남기고 혼자 중국에 머물고 있으며 평안한 집안을 기대했다. 사춘기 두 딸을 케어하는 아내의 고충을 외면하고 그저 아내만 나무라곤 했다. 큰 소동이 있다는 글을 읽고 나면 아내에게 전화하곤 했다. 무슨 내용인지 그 당시 큰 소동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마 큰 소동이 있었다 할지라도 전화를 받은 아내 또한 별일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을 터였다. 지금 자세히 읽어 보니 작은 딸의 글이 앙증맞다. 큰 소동은 자기가 아닌 언니와 엄마의 일이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 충돌에서 방구석 한쪽에서 숨죽이고 지켜봤을 작은 딸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PS : 이 즈음은 큰딸은 고등학교 진학이 결정되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외고에 합격하고 기쁘기만 했던 나였기에 앞으로 집안에서 큰 문제가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학업성적으로 판단했던 나였다. 두 딸의 성적이 좋으면 집안이 평온해진다는 단순한 생각. 하지만 삶에서 성적은 일부분인 것을... 그건 사춘기 두 딸이 겪는 정신적인 고민을 외면하려 한 비겁한 태도였다. 세월이 지나 나는 퇴직했고 60대 중반을 넘기면서는 인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두 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부녀지간이라는 혈연에 의한 관계가 아닌 좀 더 이성적인 관계에서 아빠 역할을 했어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런 반성, 자기 성찰이 있은 후 나는 두 딸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친구같은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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