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0일 차 2017. 6. 13. 김천시 남면 남북저수지-왜관읍-대구시 경북대학교 (46.9km)
왜관초등학교 인근에는 구상문학관이 있었다. 구상 시인은 이곳 태생은 아니지만 왜관에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문학관에 전시된 초고를 보니 구상의 원고 글씨가 어찌나 정갈한지 시인의 성격을 알만 했다.
문학관에는 이중섭, 박종화, 노천명 등이 구상에게 쓴 편지도 있었다. 우리 중고등학교 때 외웠던 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그 당시에 나는 이 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가지가 길어서 왜 슬프지? 하지만 국어 선생님은 우리 반 학생 모두에게 동일한 감상을 요구했다. 그땐 그랬다. 사람은 그림을 보던, 음악을 듣던, 글을 읽던,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느낌이 틀린 데 내 어린 시절에는 감정도 느낌도 모두 하나의 정답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58살의 청년인 나, 이번 나의 도전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아니 안했다. 아내도 이해를 못하니 당연한 거겠지. 나이 먹으면 그렇게 먼 거리를 걸으면 안 되고, 걸을 땐 꼭 목적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감정도 느낌도 하나의 정답이었던 그 시절에 형성된 사고로 아직도 스스로가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걸었다.
구상문학관 앞의 커피숍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막연히 기대했던 왜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지만 왜관은 나에게 뭔가를 준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왜관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 국토종단 남은 4일간 3일은 매일 걸어야 할 거리는 45km 이상으로 짧지 않은 거리다. 체력도, 계획도, 준비도, 방심해선 안 된다.
나는 왜관읍을 빨리 빠져나와야 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 반. 김천시 남면 남북저수지를 아침에 출발하여 7시간이 경과했는데도 17km밖에 못 걸은 셈이었다. 두 시간을 넘게 쉬며 걸으며 왜관 읍내를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너무 많은 호기심과 섬세한 관찰, 그리고 감상에 젖어 한두 시간을 보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장시간을 한곳에 머물러 있던 건 처음이었다. 왜관읍이 읍치고는 꽤나 크기도 했고 역사와 문학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왜관을 떠나 대구방향으로 걸으려 하니 갑자기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보는 것도 적당히, 즐기는 것도 적당히, 휴식도 적당히 해야 한다. 장거리 도보여행자에게는 거리와 걷는 속도에 따른 안배만큼이나 보고 즐기며 쉬는 시간의 안배도 중요하다.
오늘 도착지는 대구 경북대학교 인근이다. 여기 왜관읍에서부터 30km를 더 걸어야 한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 종종 나는 신체 반응을 무시하게 된다. 빠른 걸음으로 구 4번 국도로 계속 걸어갔다. 이 도로는 매우 한적하여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고 시골 내음을 한껏 맡으며 걸을 수 있었다. 또한 경부선 철길을 끼고 나란히 길이 나 있어 철길을 옆에 두고 걷는 재미도 좋았다. 연화역, 신동역 모두가 경부선의 옛 추억을 간직하고 한 폭의 그림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지천면은 대구와 인접한 칠곡군의 면이다. 맘이 급하니 발걸음도 빨라져 왜관읍에서 지천면 용산리 지천초등학교까지 17km를 4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단숨에 내달아 도착했다. 지천 초등학교 운동장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려고 신발을 벗고 보니 왼쪽 발목이 다시 약간 부어오른 것 같았다. 빨리 걷다 보면 아무래도 발을 빠르게 내디디게 되고 배낭의 무게도 내디디는 발걸음에 빠르게 전달된다. 그때 무릎이나 발목에 몸과 배낭의 하중이 그대로 전달된다. 다행이 발목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고 무릎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신체 반응을 무시하고 빨리 걸을 순 없었다. 나는 좀 더 쉬기로 했다.
하교 시간이 지났음에도 몇 놈은 학교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시골농촌이란 데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도 그다지 놀게 마땅치를 않다. 부모들은 모두 논밭에 나가니 학교 남아 노는 게 더 날지도 모른다. 나 어릴 적은 동네마다 애들 천지니 어느 동네 건 애들 떠드는 소리로 늘 왁자지껄 했다. 요즘은 시골동네에도 놀 아이가 없으니 이렇게 운동장에서 놀 수밖에 없는 게지.
한참을 쉬고 있는데 퇴근하던 선생님이 다가와 아이들 애기를 해서 알았다. 여기 노는 아이들은 이 동네 아이들이 아니었다. 본래는 이 학교도 여는 시골학교와 같이 학생이 없어 폐교 대상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인접 대구의 아이들이 이리로 전학을 오기 시작했다. 시골학교의 자연스러운 학습 환경이 좋다는 바람이 막 불었던 그때였다. 한둘씩 전학 오더니 지금은 전교생 55명 중 30명이 대구에서 다니는 학생들. 부모가 직접 차로 태워주는 경우도 있고 학부모들끼리 돈을 걷어 통학버스를 운영하는데 지금 놀고 있는 아이들은 대구에서 통학하는 아이들로 하교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였다. 내가 헛짚어도 한참을 헛짚었다. 싫어서 떠났던 시골 초등학교가 이젠 도시 아이들이 몰려드는 학교로 바뀌었다. 하지만 학교가 어디에 있던 아이들만은 우리 어린 시절 천진난만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지천면은 그래서 시골 아닌 시골이었다. 저 멀리는 경부고속도로가 보였다. 지천초등학교 바로 밑에는 지천 간이역이 있었다. 지금은 폐쇄되어 화물역으로만 운영되고 있었다. 역전에는 오래된 식당 두 군데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없는 역으로 변해 장사의 어려움은 피할 수 없었는지 한 군데 식당은 문이 닫혀있고 임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지천초등학교처럼 시골 역은 다시 찾아 올 사람은 없을 테니 언젠가는 이 역도 수명을 다하지 않을까 안타까웠다.
우리는 얘기하다가 뭐가 지천으로 있네 하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이곳 지천면은 지천(枝川)이라는 한자로 지천으로 있네 할 때의 지천(至贱)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그런데 지천 간이역의 입구 돌에 새긴 시구가 있는데 지천(至贱)이라는 단어로 지은 시였다. 지은이가 그런 의도로 시를 썼다면 나도 글귀 그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왜관읍에서 지천 간이역까지의 17km 길은 전형적인 시골 도로였다. 지천면을 빠져나오자 대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차량으로 꽉 찬 도로, 고층의 아파트의 숲,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방금 전까지의 여유가 한방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신호등, 오고 가는 차들, 무표정의 도시. 그래서 대도시를 걸을 때는 피곤함이 가중된다. 다행히 나는 2km를 더 걸어 와룡대교를 넘어 금호강 자전거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왜관읍에서 지천 간이역까지의 17km 길은 전형적인 시골도로였다. 지천면을 빠져나오자 대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차량으로 꽉 찬 도로, 고층의 아파트의 숲,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방금 전까지의 여유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수많은 차량들, 시야를 가리는 빽빽한 건물들, 신호등, 그리고 무표정의 도시. 그래서 대도시를 걸을 때는 피곤함이 가중된다. 다행히 나는 2km를 더 걸어 번잡한 도로를 빠져나와 와룡대교를 건너 금호강 자전거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시간은 저녁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가 34km. 앞으로 약 11km 더 걸어야 한다. 나는 되도록이면 밤 9시 전에는 목적지 사우나에 도착하고 싶었다. 4일간 야영을 하느라 샤워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두 다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워서 그런지 허기도 느껴졌다. 하지만 대구 금호강변에는 편의점이 없었다. 11km 정도는 버티면서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금호강변에 접어들기 전에 간식거리도 준비하지 않았다. 뭔가는 먹어야겠기에 배낭 속을 뒤져보니 라면이 있었다. 라면 한두 개는 늘 배낭 속에 있었다. 상할 염려도 없고 배고플 때 아무데서나 끓여 먹으면 되니까. 나는 생라면에 수프를 풀어 과자처럼 먹으며 걸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렇게 많이 먹어 봤다. 배가 고파 그런지 오늘 생라면이 그때처럼 맛이 괜찮았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걷는 속도도 현격히 더뎌졌다. 이젠 정신력으로 걸어야 했다. 금호강변 우측은 모두 아파트촌이었다. 평소의 나는 지금 시간 퇴근 후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은 후 소파에 누워 TV를 봤다. 이런 상상을 하면 나는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하며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그래서 잡생각을 떨쳐 버리는 게 정신력인 셈이다. 나는 생각을 바꿔 바로 도착할 사우나욕탕 안의 나를 상상하며 걸었다.
어둑해지는 금호강변을 걷는 건 매우 지루했다. 대구는 이렇게 나의 첫인상에 새겨졌다.
경북대학교 인근 사우나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10분, 사우나에 도착하자마자 세차게 소낙비가 내렸다. 사우나 맞은편 24시간 뼈다귀해장국집이 있어 빈속을 가득 채웠다. 다행히 비는 맞지 않았고 해장국도 한 그릇 비웠으니 오늘 힘든 건 다 잊게 되고 나름 성공적인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4일 만에 물다운 물을 만난 나는 비누칠을 하고 껍데기를 벗기듯 때를 밀며 욕탕에서 한 시간을 넘게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의 목욕이었기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4일 남았다. 맘의 여유마저 생겼다. 나의 얼굴은 어느덧 욕탕 안 열기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 짧지 않은 거리 46.9km를 4.3/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 나는 지금 대구 경북대학교 근처 사우나, 뜨거운 욕탕 안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