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차 횡성군-평창군] 두 개의 고개를 넘다(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21장 두 개의 고개를 넘다 (2)


21일 차 2017. 6. 30 강원도 횡성군 정금초등학교–황고개–청태산고개–강원도 평창군 장평리 (38.7km)


중국음식점 주인의 말을 증명하듯이 청태산은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청태산은 해발 1,194m이며 청태산터널(영동 제1터널)은 해발 890m로 둔내 면내에서부터는 9km 지점에 있다. 나는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될 5km 정도를 어느 정도의 속도로 걸을 건가를 계산했다. 그리고 짜장면으로 충분히 속은 채웠기에 청태산을 넘으며 먹을 간식을 점검하고 먹는 물도 보충했다. 첫 번째 해발 500m의 황고개는 쉽게 넘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890m다. 나는 지금부터는 한낮의 더위를 이기며 청태산을 넘어야 한다. 아침 신체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 10km 평지는 2시간 10분이면 걷는다(4.6km/1h). 하지만 동일한 거리를 고갯길 등의 조건이나 늦은 오후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는 3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3.3km/1h). 890m의 오르막인 데다가 한낮의 더위를 감안하여 나는 청태산 고개 정상까지 2시간 20분에 걷기로 했다(3.9km/1h). 다시 점검해 본 나의 신체는 청태산을 올라가도 된다고 허락했다.

장거리 도보에서 거리별 시간 안배는 나의 신체를 그에 맞게 스스로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와도 같다. 나는 하루 계획을 세울 때 대개 10km 단위로 시간을 안배했고 오전과 오후, 저녁 시간대의 목표에 차이를 두었다. 예를 들면 같은 거리를 오전에는 100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보면 오후는 20이 더 걸리는 120, 저녁 시간대나 밤은 40이 더 걸리는 140 이렇게 설정했다. 따라서 오전에 충분한 거리를 걷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늦어도 아침 7시 전에는 출발해야 하는 것이 내가 이번 국토종횡단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 중 하나이기도 했다.

충청도의 산이 엄마의 치마폭 같은 푸근함이라면 강원도의 산은 살아 움직이듯 용맹스러운 산이다. 청태산에 오를수록 상쾌한 공기가 코에 와 닿았다. 걸어 올라가면서 발아래 산을 두고 성취감을 맛보며 걸으니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는 기분이었다. 완만한 고개는 길게 이어졌지만 오고 가는 차량과 손인사를 할 정도의 여유도 느껴졌다. 나는 지금 ‘왜 살지?’ 하는 상념은 없다. 그냥 걷고 있다.

이 도로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수많은 차들이 다녔던 도로이기도 하다. 새로 난 고속도로가 아무리 좋다지만 청태산 가는 길 주변 경관만큼은 따라오지 못하리라.

우측에 청태산자연휴양림을 두고 계속 오르니 청태산을 관통하는 영동 제1터널이 나왔다. 나는 해발 890m의 청태산터널로 들어갔다. 터널 안은 차량도 뜸하고 터널 갓길도 좁고 곳곳이 파여 걷기에도 조심스러웠다. 나 말고 누가 여길 또 걸어가겠나 싶었다. 국토종단 7일 차 대전에서 옥천 가던 길의 대전터널이 생각났다. 고속도로에 길을 비켜주고 쓸쓸히 남아 있는 터널은 쇠잔한 노인의 모습처럼 비쳐 터널 안을 걷는 나의 맘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20170630_143131.무지높은청태산의 정산.jpg 청태산 영동 제1터널


터널을 지나니 내리막길은 오르막에 비해 경사도가 심해 두 발이 저절로 디뎌졌다. 그러니 올라오는 사람은 꽤나 힘들지 싶다. 자전거를 끌고 낑낑대며 올라오는 라이더가 보였다.

해발이 높은 곳이다 보니 곳곳에 고랭지 채소를 수확하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주로 감자와 브로콜리, 배추였다. 산등성이 브로콜리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죄다 할머니들이었다. 할머니들이 수확한 걸 길가로 옮기는 건 남자의 몫인데 젊은 남자가 없다 보니 외국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베트남에서 왔다는 한 남자는 온 지 1년 되었다는데 서툴지만 한국말도 제법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힘은 들지만 돈 벌어서 좋단다. 걷는 나를 보고 가끔 힘들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같은 대답이다. ‘나도 얻는 게 있으니 걷는다’

청태산로 내리막길은 차량도 보기 힘들 정도로 도로가 한적했다. 면온 도착 전 2,3km는 청태산로가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가기에 가끔 가족과 함께 차를 몰고 동해안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란히 가는 영동고속도로가 공사구간인지 길게 차가 막혀 있어 내 걸음이 고속도로 차량을 앞서고 가니 별거 아닌 거에 신바람이 났다.

영동고속도로와 멀어지며 다시 청태산로를 걸어 진조리. 이곳은 횡성군을 벗어난 평창군 봉평면이다. 진조로를 걷는데 너무나 한적하니 이런 땐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걸으며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다. 내 그림자는 24일간의 도보여행에서 늘 나와 함께 한 내 친구다. 가끔 나는 그림자와 얘기하며 외로움을 달래곤 한다.

강원도는 내년 초 평창올림픽 준비로 온 도로가 공사판이었다. 여기저기 고속철도, 도로확장 마무리 공사 중이었다. 고속철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터널을 뚫거나 높게 교각을 세워 철로를 만드는데 철로가 당연히 일직선으로 뻗어야하기 때문이다. 청태산을 다 내려와 진조리 마을에서 나는 성황당이 얼마나 마을 깊숙이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나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진조리 마을 앞에는 오래된 성황당이 있었다. 이곳으로 고속철로가 지나가야 해서 성황당은 옮겨지고 주변 소나무가 모두 베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성황당은 절대로 못 옮긴다며 45일간 데모하여 고속철로를 10m 밀어내서 성황당을 살려냈다는 진조리 마을어른의 얘기였다.

20170630_154108.jpg 진조리 성황당 앞길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때마다 우린 의지할 뭔가를 찾는다. 때론 그게 가족이기도 하고, 때론 그게 종교이기도 하고. 성황당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그 역할을 해 왔다.

나는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를 지나 유포리 금당계곡으로 접어들었다. 30km를 넘게 걸었고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청태산고개는 예정시간대로 넘었다. 하지만 890m의 고개가 수월하진 않았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점심의 짜장면이 소화가 다 되었는지 약간 허기도 느껴졌다. 배낭에 있는 거 다 꺼내서 먹으며 걸었다. 빵, 초코바, 사탕. 앞으로 8km를 더 가야 오늘의 목적지 평창군 장평리다.

지금의 나는 8km 장평리를 두 시간 만에 도착하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신체 반응에서 두 다리의 반응 외에도 배낭의 무게도 나쁜 신호의 하나다. 배낭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질 때는 피로가 쌓였다는 신호다. 오전의 8km와 늦은 오후의 8km는 체감적으로 틀릴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그렇다. 늦은 오후 남은 두세 시간을 도보에 집중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불필요한 생각은 때론 피로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히 부정적 상상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긍정적 사고는 장거리 도보자가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다. 따지고 보면 일상도 그러니 장거리를 걷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인 셈이다.

금당계곡 초입에서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다 쓰러져가는 폐교, 초미니 학교 등매초등학교. 지금은 버들개마을체험학교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지 운동장엔 잡풀이 무성하고 사람 드나든 흔적이 오래인 듯했다.

20170630_180053.jpg 폐교 등매초등학교


그만큼 여긴 어제 밤 내가 야영했던 정금초등학교보다 더 외진 곳이었다. 운동장 잡풀이 우거진 화단 한쪽에 서 있는 동상, 곧 쓰러질 듯 서 있는 장난감이었다. 이승복 동상. 이 동상이 한 때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폐교는 교실도 몇 칸 안 되는 초미니 학교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의 발길을 한참 머물게 했다. 나 어린 시절 바닷가 마을 학교가 이랬다.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었으니까.

20170630_175558 일그러진 이승복.jpg 등매초등학교 이승복 동상


용평면 장평리에 도착하니 밤 8시였다. 8km를 두시간 반 넘게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날이 어둑해져서 빨리 텐트 칠 곳을 찾아야 했다. 장평리 동네가 작아 찾고 말 것도 없었다. 장평터미널 뒤쪽의 속사천변 공터를 알아두고 가까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편의점에 들렀다. 내일모레 비가 쏟아진다는 일기예보가 있기에 내일 배낭을 집으로 부치고 뛰어서 주문진항까지 간다면 짐 부치는 게 가능한지 알아봐야 했다. 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일 아침 출발 전에 해야 했다.

장평터미널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터미널 뒤 공터에 텐트를 쳤다. 강원도 깊이 걸어 들어온 용평면 장평리 조그만 마을은 밤 9시가 되는 대부분의 가게도 문을 닫았다. 나는 내일모레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만 온통 신경이 쓰여 내일 아침 일어나 어떤 판단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곧바로 잠이 들었다. 38.7km. 3.7/1h(식사, 쉬는 시간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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