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22일 차 2017. 7. 1 강원도 평창군 장평리–대관령–강원도 강릉시 주문진항 (80.1km)
오늘은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남은 3일을 어떻게 할 건지 결정을 해야 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내일의 날씨부터 검색했다. 내일 비가 안 온다면 지금까지와 같이 배낭을 메고 남은 3일간 40여 km씩 129km를 걸을 것이요, 만약 내일 폭우가 쏟아진다면 오늘 배낭을 집으로 부치고 최소한의 짐만 갖고 3일간을 뛰며 걸을 생각이었다. 비 안 오는 오늘은 80km를 뛰어가고, 비 오는 이틀 49km는 비를 피하며 쉬엄쉬엄 걷자는 변경된 계획이었다.
날씨를 검색해보니 내일의 비올 확률은 90%, 비올 게 거의 확실했다. ‘그럼 짐을 부치자‘. 다행히 오늘은 비 소식이 없다. 야영 장비를 거두고 5시 반에 장평리에 하나 있는 편의점으로 가서 짐을 부쳤다. 짐이 부피가 있으니 박스 두 개로 나눠 포장했다. 내가 부치지 않은 것은 핸드폰, 충전기, 보조배터리, 카드지갑, 선크림, 바람막이 점퍼, 일회용 우비였다 (팬티와 러닝셔츠, 반팔과 반바지는 3일간 입어도 된다).
21일간 함께했던 배낭이 없어지니 동행친구가 떠난 것 같이 허전했다. 남긴 물건을 담을 조그만 배낭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손에 들고뛸 수도 없고. 우선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얻어 담고 테이프로 동여맨 후 옷핀으로 옷 등에 고정했다. 하지만 핸드폰과 보조배터리가 무게나 부피가 제법 있으니 뛸 때마다 고정시킨 비닐봉지가 출렁출렁했다. 그래서 마라톤처럼 빨리 뛰기엔 불가능했다. 그래도 배낭 무게와는 비할 바가 안 되니 그럭저럭 뛸 수는 있겠다 싶었다. 나는 서서히 뛰면서 국토종횡단 22일 차에 미친 도전을 시작했다.
오늘 80km를 도전하는 것은 이번 1,000km 도전을 위해 4개월간 준비하는 과정에서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뛰어본 경험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틀리다. 미친 도전이지만 100km 보다는 짧은 80km니 ‘죽기야 하겠냐’ 는 생각으로 나는 모든 걸 결정했다.
21일간 내 어깨를 짓눌렀던 배낭이 없는 게 그나마 나를 뛸 수 있게 만들었다. 장평리를 벗어나며 나는 속도를 내어 뛰기 시작했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었기에 속은 든든했다. 하지만 허리춤에 찢어질 듯 비닐 짐과 한 손에 생수 외엔 어떤 것도 몸에 지닐 수 없었기에 한편으로는 불안한 맘이었다.
3km 정도 뛰다 보니 좌측에 영동고속도로 평창휴게소가 보였다. 두 달 전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동해안에 갔었다. 아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고 우린 점심때 이곳 평창휴게소 야외 벤치에서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 가족 4명이서 않았던 벤치가 보였다. 나는 힘들 때마다 가족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었다. 오늘 무모한 도전에 불안감이 없진 않지만 평창휴게소에서의 추억이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오늘 80km를 나는 12시간 안에 뛸 계획을 세웠다. 1시간에 6.7km 뛰면 된다. 올 4월 100km 울트라마라톤 때 완주도 했다. 평소 연습 때 10km를 1시간에 뛰었던 나로서는 이 정도는 오히려 너무 천천히 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건 큰 착오였고 자만이었다. 나의 신체는 이미 21일간의 도보로 지쳐있었고, 뛰기에도 맞지 않는 옷차림에 달리다가 허기진 배를 채울 먹거리나 물도 전혀 준비가 없었다. 마라톤 배낭이 없으니 그런 걸 준비해봐야 소용도 없었다. 거기다가 오늘도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꽤나 높은 고개였다. 속사 고개(777m), 대관령 고개(832m). 그런 높은 고개를 뛰어갈 때는 평지보다 1.5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막연히 ‘별일 없겠지’ 하는 과신으로 나는 결국 만신창이 몸이 되어 거의 탈진상태로 오늘의 목적지 강릉시 주문진항에는 밤 10시가 넘어 도착했다.
진부로 가기 위해서는 속사고개를 넘어야 한다. 나는 대관령고개만 알았지 속사 고개가 이렇게 높고 험한지 몰랐다. 해발 777m의 고개에 경사가 급해 애초에 쉬지 않고 뛰어서 넘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속사고개 오르막이 시작되어 중간 정도에서부터는 뛰다 걷다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80km를 뛰어야하는 나는 이제 시작이라 나중 체력도 생각해야 했다. 고개 정상이 어찌나 멀고 경사가 급한지 배낭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장평리에서 속사고개 정상까지는 약 13km. 두 시간 남짓 걸렸다. 속사고개 중간부터는 뛰다 걷다 보니 결코 뛴 속도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속사고개 내리막길에서는 두 다리에 가속도를 붙여 빠르게 뛰어 내려갔다. 몇몇 라이더들이 갈지자로 페달을 밟으며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어떤 라이더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며 이게 진부령이냐고 물었다. (나도 이 고개가 속사고개라는 것은 다 내려와서 동네사람에게 물어봐서야 알았다). 나는 쉼 없이 단숨에 뛰어 고개를 내려왔다. 마치 오르막에서 까먹은 시간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5km 정도를 순식간에 뛰어 내려오니 25분이 채 안 걸렸다. 그렇게 빨리 뛰다 보니 등에 붙어있던 비닐 짐은 너덜너덜해져 더 이상 멜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다 헤진 비닐 짐을 손에 들어야 했다. 이렇게 들고는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천천히 뛰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선은 테이프로 헤진 비닐봉지라도 다시 얽어매 보려고 진부 면내 조금 못 미쳐 길가의 택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정 얘기를 들은 나이든 택배기사가 비닐로 해야 또 얼마 못 간다며 과일 쌌던 보자기를 주면서 어깨에 동여매고 뛰어보라 했다. 초등학교 때 책보 매듯이 해보라고 하며. 그 기사의 말이 옳았다. 나는 이 보자기를 3일 내내 매고 배낭 대신 유용하게 사용했다. 비록 내 차림새는 이상했지만 이 보자기는 이번 1,000km 도보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진부면에서는 오대산 방향의 이정표가 여기저기 있었다. 오대산이 원체 유명한 산이기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차량으로 오기에 그렇다. 나는 오대산 월정사 이정표만 보고 뛰었다. 배낭을 메고 걸을 때는 길이 헷갈리면 검색을 하며 확인하고 했는데 지금은 보자기에 핸드폰을 싸서 둘러맸으니 뛰면서 꺼내보는 것은 뛰는 행동을 중지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웬만해선 이정표만 믿고 달렸다. 23km는 넘게 뛰어왔고 배도 고프기에 길가 메밀 국숫집에서 배를 채웠다. 시간은 오전 10시 31분. 점심이 아니라 간식이었다. 울트라마라톤에서는 중간에 수시로 먹어야 뛸 수 있다. 오늘은 끼니수와 관계없이 허기지고 식당이 보이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먹을 생각이었다.
메밀국수에 시원한 국물까지 다 마시니 배가 출렁거려서 바로 뛰기가 거북했다. 나는 5분 정도 천천히 걸었다. 평창올림픽 도로확장 공사로 강원도 내륙의 도로는 엉망이었다. 공사현장 도로를 요리조리 피하며 나는 다시 마라토너가 되어 뛰기 시작했다.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 월정사’ 속으로 외치며 한참을 뛰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오대산을 가는 게 아니라 대관령을 가야 하는데 이 길이 맞나 싶었다. 결국 나는 2km 정도를 엉뚱한 데로 뛴 것이었다. 내가 뛰어 온 길은 지난 이틀간 걸어왔던 6번 국도였다. 이 길로 가도 주문진항은 나온다. 하지만 나는 국토횡단에서는 꼭 대관령을 넘고 싶었다. 월정삼거리(평창군 진부면 간평리)에서 나는 지금 왔던 6번 국도가 아닌 456번 국도로 달렸어야 했다. 되돌아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그만큼 대관령은 나의 머릿속에 큰 이정표였다. 국토종단에서 추풍령이 그랬듯이. 되돌아 월정삼거리로 왔는데도 대관령이라는 표지가 없었다. 맞겠거니 하며 456번 국도를 뛰다 보니 “횡계 12km”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조금 더 뛰니 “대관령면 하늘아래 첫 동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우리가 흔히 대관령으로 아는 그곳은 대관령면 횡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