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차 평창군-주문진] 미친 도전(2)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22장 미친 도전, 대관령을 뛰어서 넘다 (2)


22일 차 2017. 7. 1 강원도 평창군 장평리–대관령–강원도 강릉시 주문진항 (80.1km)


횡계리로 가는 길은 이미 대관령을 올라가는 완만한 고갯길이 시작된 지점이었다. 횡계리 자체가 해발 700m에 있다. 나는 완만하고 길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뛰었다. 보자기를 어깨에 멘 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지금 내가 신경 쓸 게 아니었다. 나는 보자기 배낭을 몸에 잘 부착하여 3일간을 버티며 최종 목적지 속초에 닿는 게 목적일 뿐이었다.

대관령고개는 라이더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대관령고개는 우리들 맘속에 누구나 한 번쯤 디뎌보고 싶은 곳임에 틀림없다. 나는 오늘 드디어 그 고개를 넘는다. 횡계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47분. 장평리를 출발하여 속사고개를 넘어 진부면을 지나 23km 지점에서 메밀국수를 먹은 후 거기서부터 다시 뛰어 횡계리까지 13km. 나는 36km를 거침없이 달려왔다. 오대산길 되돌아 나온 거리를 감안하면 꽤나 빠른 속도로 달렸다. 배가 또 고팠다. 미친 마라토너는 횡계리에서 뭔가를 또 먹어줘야 했다. 뛰는 건 걸을 때 보다 체력소모가 훨씬 심해 금방 배가 고프다. 그래서 나는 먹는 곳이 보이면 무조건 조금이라도 먹어야 했다. 나는 앞으로도 64km를 더 달려야 한다.

황태국밥으로 점심을 하며 40여분을 쉬었다. 식당의 손님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나와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456번 국도를 뛰고 또 뛰었다. 횡계리에서 대관령고개까지의 길은 평평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이었다. 횡계리에 도착했을 당시 나는 이미 상당히 높은 곳에 와있던 것이었다. 저 멀리 대관령 풍력발전기가 보였다. 거기가 바로 대관령휴게소.

대관령 휴게소 풍력발전기

대관령휴게소는 토요일을 맞아 인근 양 떼목장을 가거나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관령휴게소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몰렸음을 휴게소 크기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한쪽만 사용하고 반대쪽은 커다란 주차장으로 텅 비어 있었다. 여기서 100m 앞이 대관령. 나는 할 일없이 휴게소를 기웃거리는 여유까지 부리며 잠시 숨을 고른 후 대관령고개 정상으로 천천히 달렸다. 드디어 대관령.

대관령 고개의 필자

22일 동안 나는 많은 고개를 넘었지만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여기는 출발지 평창군 장평리로부터 42km 지점. 대관령고개 정상 832m 높이에 서있는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3분.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을 빼고 42km를 시속 6.9km로 달렸으니 속사고개와 대관령고개를 감안하면 잘 달려왔다. 뛰다보니 천천히 뛰더라도 쉴 수는 없었다. 두 번의 식사로 1시간 35분을 쉰 것을 제외하고는 나의 두 다리는 계속 움직였던 것이었다. 이젠 남은 거리는 38km. 이제부턴 대관령 내리막길로 수월할 테니 저녁밥은 오늘의 목적지 주문진항 도착해서 먹기로 하고 그 사이는 대관령고개 넘어 강릉시에서 만날 길가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며 계속 뛰어가기로 했다. 그러면 밤 9시 전에는 도착할 거 같았다. 이제부턴 내리막이니 넉넉잡아 7시간이면 목적지 주문진항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 계산은 대관령을 뛰어 내려가면서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 내리막을 뛰던 내 두 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오른쪽 허벅지의 경련이었다. 대관령의 내리막은 경사가 급한 곳은 경사도가 최대 13%로 다리를 내딛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리막길이 평지보다 느렸다. 나는 허벅지 근육통이 심하면 잠시 서서 쉬다가 나지면 다시 걸으며 내리막길을 뛰지 않고 걸어 내려왔다. 속사고개를 뛰어 내려왔던 오전 하고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빨리 걸을 수도 없었기에 나는 그저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대관령 내리막길

대관령고개 정상에서 대관령박물관까지 10km 거리를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왔다. 이런 때는 쉬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국토종횡단의 두 번째 철칙, 당일목적지는 당일에 꼭 가야 했다. 이미 주문진항 도착 예정시간은 많이 늦을 게 예상되었다. 걷다가도 이왕 뛰기로 한 오늘이니 어떻게든 뛰어보자는 객기로 뛰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관령 내리막길에서는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두 다리는 나에게 ‘그만 뛰세요’ 를 계속 외치고 있었다. 나는 정말 힘들게 대관령고개를 내려왔다. 평지는 오히려 걷기도 괜찮았다. 나는 강릉시 성산면사무소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강릉시청이 보였다. 시간은 저녁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60km를 뛰며 걸으며 완전히 나를 다 소진해 버렸다. 남은 20km를 어떻게 갈 것인가. 사실 방법은 없었다. 뛰던, 걷던, 기어가던, 두 발로 가는 것뿐이었다.

강한 정신력이란 이런 때 필요했다. 58살 청년이라고 외치며 출발했던 임진각에서의 첫 날 다짐이 떠올랐다. 만류하던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결국 여기서 멈추면 나는 이후에 다시는 걷겠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꿈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뛰어야 했다. 나는 주문진을 향해 또 뛰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58년의 삶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많은 어려움을 만났고 그걸 극복하며 살아왔다. 그런 시간들이 나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시련은 있겠지. 지금 나는 당면한 이 시련부터 이겨내야 했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58살! 네가 정말 청년이라면 다시 뛰어라’.

강릉시 오죽헌을 오른쪽에 두고 돌아 뛰어 강릉과학일반산업단지를 지날 때 시간은 이미 밤 8시를 넘었고 사위는 어두워 자동차 불빛에 기대어 조심해서 뛰어야 했다. 7번 국도 동해대로를 밤 시간에 달리는 건 매우 위험했다. 그만큼 차량도 많고 차들도 빨리 달렸다. 주문진항은 6km 남았다. 가끔씩 지나는 차들이 나에게 위험하니 이 길로 뒤지 말라는 듯 상향등을 올렸다 내렸다 했고, 내 옆을 지날 땐 경적까지 울려댔다. 하지만 나는 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목적지 주문진항까지는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었다.

동해대로 밤길

주문진항은 평소 같으면 닫았을 어시장 가게들이 토요일 관광객을 맞느라 밤 10시가 넘은 지금 시간에도 불빛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불이 꺼져 쓸쓸한 주문진항의 밤이 아니었길 다행이었다. 그만큼 오늘 대관령고개 내려오면서부터는 나는 힘들고 쓸쓸했다.

나는 주문진항 가로등 길을 따라 걸으며 밥집을 찾아 들어가 저녁을 해결했다. 너무 탈진하니 입맛도 없었다. 곰치국에 밥을 말아 꾸역꾸역 한 그릇 비웠다. 평지를 뛰면서는 허벅지 근육 경련은 사라졌지만 근육이 굳은 뻣뻣한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사우나 뜨거운 탕에 들어가 근육을 풀어 주어야 했다. ‘그래도 잘했어 청년‘ 나는 중얼거리며 주문진항 끝에 있는 사우나로 향했다. 지금 중요한 건, 걸었던, 기었던, 내가 주문진항에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밤의 주문진항


미친 도전은 16시간 만에 나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장평리에서 강릉시 주문진항으로 옮겨 놓았다. 나는 보따리 짐을 둘러매고 허벅지 고통을 이겨내며 80km를 뛰었다. 사실 나는 오늘 정상적인 마라토너의 몰골은 아니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어떤 도전은 미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나는 오늘 거리 80.1km를 6.3km/1h(식사, 쉬는 시간 제외)로 뛰어 대관령고개를 넘어 주문진항에 왔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몰골로 뛸 일도 없겠지.. 나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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