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1일 차 2017. 6. 4. 임진각-파주시–경기도 고양시 공릉천변 공원 (31.2km)
요즘 젊은이들은 통일로라는 이름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통일로를 걷다 보면 특별히 6.25 전쟁을 떠오르게 하는 건 없다. 통일로 주변은 그저 한적한 여느 농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문산을 지나 좌측에 통일공원이 있어 그나마 이곳이 전방 쪽이고 아직도 남북이 긴장상태구나 라고 느낌이 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통일로, 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오래된 나무들은 6.25의 아픈 역사를 알고 있으리라. 나는 길에 묻고, 길가 나무들의 얘기를 들으며 통일로를 걸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부터 이곳 문산 통일공원까지는 7.5km. 첫날이라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시작했고 통일로가 비교적 넓은 차선으로 쭉 뻗어있으며 갓길도 자전거가 다닐 정도로 넓어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라이더들도 많아 손인사도 나누며 걸었다. 화창한 일요일, 라이더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지나갔고 몇몇 라이더는 나의 행색을 보고 장거리 도보자인 줄 아는지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갔다. 파이팅 소리를 들으면 나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늘 함께 있다 라는 생각이 들어 더 힘이 났다. 정오를 넘기면서 햇빛이 따갑게 내리쪼여 온도를 보니 32도였다. 아스팔트 지열이 더해 더위가 더 강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정도 더위는 앞으로도 매일 겪어야 하는 더위였다. 나는 선캡을 목덜미까지 내려쓰고 쉬지 않고 아래쪽 파주 방향으로 걸었다. 배낭의 무게는 출발 전 익숙해지기 위해 4개월 훈련기간에 몇 번 메고 10여 km씩 걸었던 적이 있기에 섧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내 배낭은 30L 배낭으로 배낭만의 무게는 1.2kg, 이번 도보여행을 위해 최적의 크기와 무게를 고려하여 새로 준비했다. 텐트는 배낭 위에 별도로 맸다. 그래서 총배낭의 무게는 10~12kg 정도.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장 고민했던 건 텐트, 텐트는 1인용 텐트로 아주 가벼운 것으로 하자니 어떤 것은 바람에 날아갈 듯 허접했고 좋은 잠자리를 위한다면 2kg이 훌쩍 넘었다. 나는 그중에서 무게 1.4kg의 초경량 텐트로 준비했다. 펴고 접기도 간편하고 높이도 낮은, 1평 넓이가 채 안 되는 텐트였다. 초경량이다 보니 한 사람만 누울 정도의 면적이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낭과 텐트 안쪽에 붙어있는 라벨도 가위로 잘라냈다. 침낭은 900g, 코펠 600g, 소형 가스버너 450g , 부탄가스 300g , 생수 2개 1kg , 배터리 손전등 핸드폰 충전기 등 900g, 먹거리 1.2kg (햇반, 빵, 초코바, 사탕, 라면, 햄, 김치 등), 의류 1.6kg (긴 바지, 반바지, 속옷, 수건, 바람막이 점퍼, 비옷, 양말), 기타 의약품 외 800g. 줄이고 줄여도 10.5kg. 10kg을 넘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줄여도 그 이하는 안 되었다. 장거리 도보에서 배낭의 무게는 자기 몸무게의 1/10이 가장 적당하다는데 야영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배낭은 나에게는 최소의 준비였다. 내 배낭의 무게는 10kg을 최소로 그때그때의 도보환경에 따라 1~2kg은 더 늘어났다.
긴 여정의 첫날이기에 나는 중간중간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고 신체 상태를 점검하면서 걸었다. 실전이 시작되었기에 나는 매 10km마다 나의 신체 반응을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중에 나의 도보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파주시 조리읍을 지나서는 통일로 국도를 벗어나 파주삼릉에 들러 잠시 답사여행의 멋을 느끼기도 했다. 도보여행 계획 시 답사지를 사전에 공부해서 많이 알아 놓으면 그곳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답사지가 걷는 방향과 같다면 문제없겠지만 걷는 방향과 다르게 옆으로 들어갔다 되돌아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도보 계획 시에도 거리나 시간을 잘 참고해야 했다. 파주삼릉은 국도에서 안쪽으로 800m를 걸어 들어가야 하고 세 개의 릉(공릉, 순릉, 영릉)을 다 돌아보는데 대략 1.5km 정도 더 걷는 거니 왕복으로 하면 약 3km를 걷는 셈이었다. 약 3km의 이 거리는 오늘 나의 목표거리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하루 목표시간과 거리를 산정할 때는 늘 답사지에서의 거리와 소요시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임진각을 출발하여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어와 17km 지점 파주시 봉일천리까지 걸어왔다. 집에서 아침 5시에 밥을 먹은 후 어제 배낭에 넣어 두었던 삶은 계란 두 개 밖에 먹은 게 없어 배가 고팠다. 봉일천삼거리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콩나물비빔밥을 눈 깜짝할 사이 비웠다. 비빔밥은 주문하면 빨리 나오기도 하지만 먹기도 금방 먹는다. 바삐 걸어야 하는 도보자라면 시간 절약을 위한 최고의 메뉴이기도 하다. 식당 들어왔다 20분이 채 안되어 일어나려니 주인이 좀 쉬었다 가라는데 나는 오늘이 첫날이고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여 첫 날을 되돌아보며 쉬고 싶은 마음에 바로 일어나 다시 걸었다.
저 멀리 북한산이 보였다. 나의 신체리듬에서 나는 아직 다리가 아프거나 피곤한 기색은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첫날을 기분 좋게 마치고 싶은 강한 정신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햇빛에 노출된 피부는 어느덧 벌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반바지 아래의 무릎과 종아리 그리고 반팔의 팔뚝은 눈에 띄게 피부색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목과 얼굴에 선크림을 다시 발라 주었다. 평소에 선크림을 잘 사용하지 않던 나는 이번 도보여행에서는 한낮에 강한 햇빛 아래 걸어야 하기에 선크림을 충분히 준비했는데 이건 나를 염려한 아내가 손수 준비해 준 것이었다. 특히나 얼굴은 민감한 피부기에 장시간 도보에 나는 더 주의해야 했다.
오후 4시가 넘어 공릉천로 벽제를 지나니 라이더들이 내 옆을 획획 지나 오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 서울로 가는지 빠르게 내 달렸다.
나도 오래전에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다. 벽제 문봉에 있는 할머니 산소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1970년대 초,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 온 우리 집은 서울 구석의 어느 동네에 살면서 6남매가 비좁은 집에서 살았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할머니에게만은 방 하나를 별도로 내주었다.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내리고 비녀를 꽂으신 단정한 모습으로 계셨다. 참빗으로 빗는 할머니 머리는 어찌나 정갈하게 선을 그리며 모아져 훑어 내려지는지 마치 기계에서 국수 가락이 뽑아지는 듯 반듯했다. 서울로 이사와 온종일 집에만 계시던 할머니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화투를 꺼내 패를 맞추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막내인 나를 불러 돈내기 민화투를 치곤 했다. 민화투가 뭔지도 모르는 내게 할머니는 일부러 져주며 내게 동전 몇닢를 쥐어 주시곤 했다. 할머니는 나와 함께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 할머니의 용돈에 맛이 들린 나는 학교를 마치고 오면 할머니에게 화투 하자고 조르기까지 했다. 그 당시 할머니는 나의 주전부리를 책임진 셈이었다. 중학교 졸업을 얼마 앞둔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웬 사람들이 집 앞에서 웅성거리며 서있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거 같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형님들에게 전보 칠 곳을 얘기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무서워서 할머니 방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문틈으로 보니 어머니와 다른 한 분의 아주머니가 할머니 입에서 나온 거품을 닦아내고 계셨다. 막 운명을 하시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를 보내던 날 나는 더 이상 주전부리 값이 나올 데가 없다는데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할머니의 존재는 그 후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 방학 때 나는 벽제 문봉의 할머니 산소에 가기 위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통일로를 연신내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갔다. 아마도 철없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로 갔던 이 길을 35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공릉천로 벽제를 지나니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멀리 보이던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쾌청하여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장거리 도보자에게 날씨는 걷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날씨가 좋으면 걷는 기분도 좋아 그만큼 발걸음도 가볍다. 오늘 국토종단의 첫날, 이런 청명한 날씨는 내가 행운의 출발을 했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고양시 공릉천변 공원 거의 다 와서 6.25 참전비를 만날 수 있었다. 한미해병대참전비, 필리핀군참전기념비. 나는 6.25 때 산화한 영령들을 잠시 생각했다. 그들이 아군이던 적군이던 전쟁으로 인한 아픔은 더 이상 없길 바라며.
필리핀군참전기념비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나는 공릉천변 공원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오늘의 목적지였다. 나는 오늘 야영으로 첫날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지금 시간은 저녁 6시 5분.
나는 오늘 4.6km/1h (식사, 식사 시간 제외)로 걸으며 31.2km를 무리 없이 마무리했다. 임진각에서의 출발이 오전 10시였기에 많이 쉬지 않고 빨리 걸은 셈인데 어떠한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출발 전 4개월간 충실했던 시간도 밑거름이 된듯했다. 하루하루 걸을수록 적응하며 더 강해질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겨났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았던가.
첫날을 무사히 마치고 잠시 쉬고 있자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고양시 공릉천변 공원에서 본 서쪽 하늘은 석양에 붉게 물들었고 맞은편 들판은 석양 붉은빛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햇반과 햄, 김치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니 날은 어두워지고 공원에는 나 혼자뿐. 순간 밀려드는 외로움. 이번 계획을 준비하며 내가 왜 이걸 꼭 해야 하는지, 정말 할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24일간 혼자라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 나는 첫날 그 혼자만의 시간에 있다. 이제부턴 익숙해져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쏟아지는 별들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에게 요즘 같은 번잡한 시대에 나만의 시간, 공간은 없다. 아마도 우린 나를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 맘껏 혼자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자연의 모든 것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덧 두려움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