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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pr 19. 2018

잊힌 제국 크메르, 빛나는 앙코르왓

캄보디아 씨엠립 크메르 제국 앙코르왓의 길을 뛰다

  캄보디아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캄보디아에 오면 누구나 제일 먼저 앙코르왓을 가보고 싶어 한다. 캄보디아의 설날인 쫄츠남을 맞이하여 나는 3일간의 연휴기간 동안 씨엠립에 있는 앙코르왓에 가는 기회를 가졌다. 브라흐마 신은 힌두교 신화에서 나오는 창조의 신으로 비슈누, 시바와 함께 힌두교의 세 개의 신이다. 브라흐마 신의 제삿날이 4월 13일이며 이 날이 캄보디아에서는 설날 즉, 쫄츠남이다. 쫄츠남은 우리의 설날 풍습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 가족과 함께한다. 직장이나 학교도 일주일 정도 문을 닫는다.

  앙코르왓을 가기로 결정한 후 내가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운동화와 마라톤 배낭이다.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앙코르왓을 나는 뛰어서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앙코르왓의 "Angkor"는 도시, "Wat"은 사원을 뜻한다. 앙코르왓을 본다는 기대와 함께 잊힌 제국을 두 발로 뛰어 본다는 기대가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프놈펜에서 앙코왓이 있는 씨엠립까지는 약 300km. 짐을 챙겨 나온 나는 15인승 승합차에 탔다. 캄보디아는 철도가 거의 없고 도로로 이동하는데 최근에는 도로 사정이 좋아져 다행이다. 승합차는 서쪽의 태국 국경 방향으로 가는 6번 국도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며칠 전에 다들 고향에 내려갔는지 쫄츠남 당일인 4월 14일 아침 도로는 한산했다. 차창 밖의 풍경에 빠진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마음도 함께 달렸다.

쫄츠남 아침의 한적한 6번 국도

  어느덧 내 마음속 발걸음은 옛 크메르 제국에 닿았다. 크메르 제국 앙코르 왕국(802~1431)은 8세기 후반 자바에 볼모로 잡혀갔던 첸라 왕조의 푸스카락 왕자가 지금의 씨엠립 지역에 돌아와서 새 수도를 세웠으며 그가 바로 자야바르만 2세다. 600여 년간 번성했던 크메르 제국은 현재의 베트남 남부, 라오스, 미얀마, 태국의 일부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만들었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크메르 제국이 번성했을 당시 수도인  지역의 인구가 70만이었다고 한다. 동시대에 중국의 수도인 개봉이 80만, 고려의 수도인 개성 인구가 10만이었다고 하니 크메르 제국의 번성을 알 수 있다.

  앙코르왓의 사진을 보면서 나를 흥분시킨 것은 앙코르왓을 둘러싸고 있는 물로 만들어진 해자다. 앙코르왓은 사각형의 해자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렇게 지어진 이유는 적의 칩임을 막는 것도 중요했지만 더 큰 목적은 건축 당시 습지인 땅이 꺼져 건축물이 자꾸 허물어지기에 안정적인 건축을 위해 사방을 해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의 건축, 측량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나 알 수 있다. 뛰는 걸 취미로 하고 난 다음부터 나는 사진 속 앙코르왓을 보면서 사각형의 해자를 따라 뛰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해자는 동서가 1.5km, 남북이 1.3km로 총길이가 자그마치 5.6km나 된다. 내일 그곳을 뛰어서 볼 생각에 나의 맘은 이미 앙코르왓에 와 있다.

해자. 폭 190m

 

  앙코르왓은 수리야바르만 2세 시대에 3,40년간의 공사로 지어졌다. 크메르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를 국교로 세우고 원래 힌두교 사원이었던 앙코왓을 불교 사원으로 개조하고 앙코왓 보다 훨씬 큰 "앙코톰"을 축조했다. 앙코르왓에서 1.5km 떨어져 있는 앙코톰은 사방 길이가 12km로 엄청난 규모다. 하나의 도시다.

 잊힌 제국의 영광 앙코르왓, 앙코톰. 크메르 제국의 역사를 더듬으며 7시간을 달려온 승합차는 씨엠립 시내 한 호텔에 나를 내려놨다. 내일은 오전 5시부터 가이드를 따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앙코왓을 보고 거기서 1.5km 떨어진 앙코톰을 본 후 다시 20여분 차를 타고 가서 더프롬 사원을 보고 2시 반경 호텔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나는 2시 반경 숙소에 돌아온 후 버스로 갔던 앙코왓 그 길을 다시 뛰어서 갈 예정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앙코왓으로 향하며 나는 잠시 뒤 뛰게 될 지금의 도로를 버스 안에서 유심히 관찰했다. 사실 구글맵이 너무나 상세하고 정확하기에 요즘은 웬만한 곳은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크메르 제국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는 듯 차창 밖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오전 가이드 관광을 마쳤다.세 곳의 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두 시 반경에 호텔에 들어온 나는 샤워를 하고 30분 정도 쉬었다. 밖의 온도가 너무나 더웠기에 수많은 관광객들도 앙코르왓을 보면서 더위에 힘들어했다. 하지만 뛸 때 나는 더위를 긍정하며 뛴다. 그래서 괜찮다. 샤워를 마친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옷을 갈아 입고 선크림과 바셀린을 바르며 뛸 준비를 한다. 한낮의 온도가 37도를 가리키고 있어 단단히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땀이 나서 살이 겹쳐 쓰라린 허벅지나 겨드랑이는 바셀린을 듬뿍 발랐다. 무더위에 남자들의 젖꼭지는 더 무용지물이다. 땀에 스치면 쓰라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젖꼭지에 바셀린을 바른 후 일회용 밴드를 그 위에 붙인다.

출발 전 호텔 앞.  37도 무더위 3시 반

  호텔을 나온 나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37도의 무더위에 페이스 조절 없이 처음부터 빨리 뛰다가는 중간에 어떻게 될지 몰라 오늘은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뛰기로 했다. 먹는 물은 앙코왓 가는  노점에서 많이 팔기에 걱정은 덜었다. 호텔에서 앙코왓 입구인 서쪽 해자 까지는 6.5km. 씨엠립 시내는 한낮 더위에 지쳤는지 거리는 한산하다.

한낮 한산한 씨엠립 거리

  1.5km를 뛰어 이젠 앙코르왓으로 가는 길. 일직선으로 뛰어가면 된다. 앙코왓 가는 길은 숲길이며 가로수가 울창하여 뛰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하지만 온몸은 이미 땀범벅이다. 한참을 뛰어 온 나는 이미 배낭에 넣어 온 두 개의 물을 다 마셨다. 잠시 쉬며 노점에서 물을 샀다.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힌 나는 가로수길 앙코르왓 가는 길을 다시 뛰었다.

서행하는 차들

  2~3km 정도 차를 옆에 두고 달리다 보니 차보다 내가 더 빠르다. 앙코왓이 가까워지며 차들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차들보다 빠르게 앞서 달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쫄츠남 기간에는 캄보디아 사람들도 많이 앙코왓에 관광을 오기에 오늘 이른 아침 버스로 갈 때는 없던 정체가 지금은 극심하다. 저 멀리 앙코왓의 해자가 보이고 차들은 아주 멈춰있다. 이런 기분에 뛰는가 보다. 나는 서있는 차들을 비웃듯 더욱 신나서 앞으로 달렸다.

앙코르 왓 거의 다와 서있는 차들

  해자가 앞에 보이고 오른쪽 길에서 오던 차 들도 꽉 막혀 있다. 나는 오던 길을 뒤돌아 보고 우측에서 끝도 없이 서있는 차들을 보며 천천히 앙코왓 입구인 서쪽 문 방향을 향해 뛰었다. 호텔에서 여기까지는 5km.

 해자 건너편 숲속에 가려진 앙코르 왓

  앙코왓 서쪽 정문 쪽으로 가는 길은 차들과 해자를 강으로 삼아 놀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여 뛰는 길조차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람과 차를 피하며 달렸다. 해자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앙코르 왓의 아이들

  앙코왓을 앞에 두고 나는 걸었다. 아니 사람이 너무 많아 뛸 수가 없다. 하지만 목적지 다와 앙코왓 해자를 건너는 두 다리는 한껏 가볍다. 다만 민소매에 반바지 운동복인 나의 옷차림이 옛 크메르 왕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거 같아 조금은 미안한 맘이다.

해자를 건너 앙코르왓

  해자를 걸어서 건넌 나는 앙코왓에 들어와서는 외곽으로 돌면서 뛰기 시작했다. 오전에 와서는 앙코왓 내부를 구경하느라 밖의 경관을 자세히 보지 못한 탓도 있지만 북적대더라도 내부를 구경하지  더위에 외곽을 밖으로 돌며 구경하는 사람은 없기에 나 혼자 만이 둘러서 멀리 보는 정취를 느낄수 있었다.

해자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 보이는 앙코르왓

  지금 시간 앙코르왓 내부는 엄청난 사람들로 붐빈다. 나는 아침에 앙코왓의 내부를 다 봤기에 이번에는 외곽으로 뛰며 돌며 앙코왓을 다. 해자를 건너 중앙의 앙코왓을 끼고돌면 약 3km의 거리가 된다. 뛰면서 멀리 보는 앙코왓의 웅장함은 카메라 렌즈 속 한 장의 사진처럼 아름답다.

앙코르왓 북쪽 외곽

  나는 해자를 건너 들어와 계속 달려 1km 정도 북쪽 외곽을 끼고 달렸다. 그리고 돌아 동쪽을 달리고. 그리고 다시 돌아 서쪽 남쪽면을 멀리 돌아 달렸다.

앙코르왓 서.남쪽

  이렇게 달려 서쪽에서 다시 바라본 앙코왓. 아침에 봤던 느낌과는 다른 나 혼자만이 느끼는 옛 크메르 제국의 모습이다. 나는 잠시 안으로 들어가 회랑을 걸어 보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말을 걸어올 거 같은 선명한 문양들.. 흔적들..

석양 에 비친 회랑

  이제 돌아가야 한다. 잠시 내부를 다시 구경하며 휴식을 취하고 나온 나는 오던 길을 다시 뛰기로 했다. 앙코왓에 들어와 한 바퀴 외곽으로 돌은 거까지 나는 8km 뛰었다. 시간은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앙코왓을 빠져나왔다. 저녁이 다돼가지만 쫄츠남의 앙코왓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밤에도 앙코왓 광장에서 많은 행사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나는 그 인파를 헤치며 빠져나왔다. 걸을 수밖에 없었다.

쫄츠남의 저녁을 맞이하는 앙코르왓

  앙코르왓을 두고오는 아쉬움도 있지만 꿈에 그리던 앙코르왓을 두발로 뛰었다는 감동이 더 컸다. 나는 피곤함도 잊고 다시 호텔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차들로 갓길 뛰기가 좋지 않아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3km 정도를 지나니 도로가 한적해진다.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고 피로감도 같이 밀려왔다. 5km 정도 지나니 씨엠립 시내가 나오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가로등 불빛, 네온이 이곳이 앙코왓의 씨엠립이라고 말하고 다.

어둠이 깔리는 시엠립 시내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6시 20분. 3시 반에 출발하여 느긋하게 즐기며 뛰었던 크메르 제국의 길이었다. 땀에 젖은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달리며 본 앙코르왓의 여운으로 옷도 벗지 않은 채 한참을 멍하니 호텔 방 창가에 서 있었다. 저 멀리 잊힌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도시가 눈 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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