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욕심들.

by 허무

단편 두 편의 초고는 마무리되어 무한 퇴고의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런데 뭔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분명 글을 쓸 때는,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 인물과 상황 등에 몰입되어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글을 잘 써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써 나가는 이야기이니 만큼 내가 깊은 몰입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퇴고를 거치면서 어색하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장면들이 등장하곤 한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쓴거지?'


예전보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육체적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사회적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잠깐 글에 집중을 하는 동안에도 나를 부르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나 좀 봐봐' 하면서 부르는 것 같다.


아직 읽은 책 리뷰에 올리지 않았지만, 비교적 최근 읽은 책이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와 윌리엄 포크너의 『곰』 이다. 신기했던 건 『스토너』를 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 갑자기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1위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나의 경우엔 대학원 수업에서 2월 쯤, 학기 시작도 전에 교수님이 추천한 도서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포크너의 『곰』은 영화 <버닝>을 본 후부터 '포크너, 포크너' 하면서 한번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 단편 두 편을 쓰기 바로 전에 읽었다.


두 작품은 나에게는 반대되는 느낌으로 인식되었는데, 그럼에도 두 작품이 다 명작이라고 불릴만 하다는 데에는 전혀 이견이 없다. 미치도록 부러운 재능이 돋보이는 두 작품이었다. 정말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들의 글 솜씨를 뺏아오고 싶다고 느꼈다. 나는 그 두 작가에게 소위 '꽂혀버렸다.'

그들의 문장을, 표현을 내 단편에 녹여낼 수만 있다면... 이리저리 어떻게든 흉내내보려 했지만, 그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 전부 작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한 문단을 고쳐 쓰고, 다시 읽어보면 유치하다. 구조가 허술하다. 깊이가 없다.

포크너는 곰 한마리에 여러 층의 상징을 치밀하게 응축시켰다. 그걸 어떻게 따라할 수 있을까?

존 윌리엄스는 평범한 인간의 생애 전반을 끈질기게 조망하고 있다. 그런 냉정함과 집중력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글을 쓸수록, 다른 글들을 읽을수록 욕심만 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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