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 그리고 다시 시작.

자전적 글쓰기는 어떻게 마음을 치유하는가.

by 허무

징징대던 단편 두 편에 대한 퇴고까지 모두 끝내고, 탈고를 결정했다.

나는 이렇게 소설을 쓰는 일에 집중을 하기 전에 막연한 생각으로는 과연 '탈고'라는게 내 사전에 가능한 일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워낙에 성격이 소심하고, 예민하고, 강박이 있는 편이라 내 자신의 기준을 통과한다는 게 어쩌면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퇴고를 거듭하면서, 내 자신은 최대한 만족할만한 글을 내놓기 위하여 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수정되거나 삭제되어 원래의 의미가 지나치게 퇴색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퇴고로 인한 정신적 피로감에 본의 아니게 브런치에도 계속 '징징대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한편으론 무모하고도 건방지게 '탈고'를 선언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니, 던져버렸다.

나는 현재 내 상황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게 지금의 내 위치임을 인정하고 새로 써 나가면 된다.




단편 두 편의 탈고와 동시에 불현듯 스토리가 하나 떠올랐다.

나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니 에르노의 『여자아이 기억』을 보고 나서도 사실 '자전적 소설'의 기능적 측면이나 글쓰기의 어려움이 직접적으로 와닿진 않았다.

물론 아니 에르노 작가의 '숨기고 싶은, 아픈 과거'를 독자에게 드러내는 용기에 대해서는 감탄을 했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내가 쓰는 건데, 그게 뭐 어렵겠어?

이것이 얼마나 시건방진 생각이었던 것인지 다시금 뼈저리게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


일단, 나의 이야기를 내가 '글로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는 것이 이렇게 부끄럽고, 힘들고, 불편한 마음이 들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런 굉장히 힘든 감정들 속에서 나는,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글쓰기가 어떻게 인간을 치유하는지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깨달은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은 없다. 그리고 나는 겨우 '자전적 글쓰기' 라는 한가지에 대해서 느낀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을 상당히 객관화 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과거의 잘못한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대해서 반성을 할 기회가 주어진 듯 했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는 이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많은 문학가들이 이야기 하는 '문학은 어떻게 인간을 치유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비슷할 것이라 본다.


나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도 하고,

그리고 그간 떠올리는 것 조차 부끄러워 마치 트라우마처럼 새겨진 기억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면서 그 근원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살펴보다보니, 한결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꼭 소설이 아니라도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한번 글로 써 보는 것이 마음 건강에 상당히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마음에 상처입고, 문을 닫아버린 많은 분들께 꼭 한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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