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는 삶
1.
얼마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일어 공부도 시작했다.
목표는 확실히 정했다.
원서를 읽자!
물론, 지금의 이 마음은 금세 흐지부지될지도 모른다.
작심삼일-다행히 3일은 넘겼다-이 될지도 모른다.
예전에 쓰던 단편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TV에서 정치적 스캔들로 많이 회자되던 말을 내 스스로 교훈처럼 각색해서 새기고 있다.
나는 1년 전에 뭘 했나? 5년 전엔? 10년 전에는?
매일 한 문장을 썼더라면, 한 편의 글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100원씩을 모아도 어쩌면 유용한 목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마음으로 지금 허우적거리듯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무언가 해야만
내년, 내후년, 5년 후, 10년 후의 내가 달라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
내가 좋아하고, 읽는 글들은 국내 작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과 영미권 작가들의 글들을 한국 작가들의 글처럼 이리저리 뜯어보고,
꼭꼭 씹어서 단어 하나, 철자 하나까지 그 맛을 음미하고 싶단 욕심이 간절해졌다.
물론, 프랑스, 독일, 러시아, 라틴문학도 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우선은 그나마 배운 경험이 있는 언어가 조금 더 익숙할테니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3.
난 다른 사람보다 식사시간이 긴 편이다.
내 나이대의 남성들은 대체로 학창시절과 군대를 거치면서 먹는 속도가 빨라져 그대로 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예전 회사나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늘 늦게 먹어서 적잖게 눈치를 보게 된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소화력이 좋지 않아 자주 체하다 보니,
최대한 천천히 먹는 연습을 하게 됐고, 그게 이젠 아예 굳어져 버려 빨리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아예 먹지 않는 쪽을 택하는게 편하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습관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난 비만이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몇 년 전까지도 스테이크라든지, 소고기를 먹을때, '레어' 정도의 굽기를 선호했었다.
핏물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입에서 소위 '녹는'느낌이 주는 황홀감에 레어를 버릴 수 없었다.
지금은 '웰던'파다.
씹는 맛이 좋다. 천천히 씹는 과정을 즐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4.
과거에 분명히 읽은 글임에도 그 내용이 일부분만 더러 기억나거나,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분명히 남아있는데, 내용은 까맣게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에는 시간이 걸려도 한번 보기 시작한 글들은 최대한 곱씹어 보려고 한다.
물론, 쓱 훑어보고 느끼는 감정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글쓰기도 예술의 한 분야이므로-이란 정답은 없지 않을까.
그래도 최근에 한 문장씩 뜯어서 읽으며 곱씹어 본 경험이
나에겐 새로운 읽는 재미와 보람을 주고 있다.
그래서, 영어와 일어도
구절양장 같은 길을 한발자국 씩 걸어가듯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원서를 읽으며 새로운 기쁨을 느낄 나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