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들
마침 플레이어에서는 Radiohead의 Creep이 흘러나왔다. 특유의 베이스 소리가 둥-둥-두둥-둥 하고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는 멋쩍은 듯 슬며시 웃어 보이곤 이내 가볍게 눈을 감았다. 잔 입구를 손가락을 벌려 잡고서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발은 베이스 리듬에 맞춰 앞뒤로 스텝을 밟았다. 그럴때 마다 머리도 같이 좌우로 힘이 풀린 듯 움직였고, 허리는 나가는 발과 반대 방향으로 비틀며 리듬을 탔다. 나는 그가 움직이는 동안 그가 들고 있는 와인잔을 주시했다. 그의 흐느적거림에도 와인의 수면은 고요하기만 했다.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뜬 그는 나에게 머리를 오른쪽 뒤로 젖히며,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잠시 시선을 피하고 머뭇거렸다. 와인 한 모금을 머금었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른 손을 허리에 갖다 댔다. 내 몸쪽으로 그의 몸이 가까워졌다. 나는 그냥 서 있기만 했다.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그는 내 몸을 두고 좌우로 번갈아 안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몸끼리 밀착시켰다. 리듬에 맞춰서. 그의 얼굴이 내 얼굴의 오른쪽에 왔을 때, 그는 내게 속삭이듯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난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바닷속에서 만타레이가 내 몸을 스쳐가던 느낌이 기억났다.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만타레이는 마치 이세계의 생물처럼 두려움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이 우주의 먼지같은 나를 스쳐가던 그 순간, 그들의 흐느적거리는 지느러미가 내 몸을 간지럽히던 그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무장해제 되는 것만 같았다. 그는 계속 흐느적 거렸다. 만타레이의 몸짓 같았다. 나는 소리없이 웃으며, 작게 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내리고 있던 팔을 올려 그의 허리에 둘렀다. 노래가 하이라이트에 다다랐다. 커지는 보컬의 음성에 맞춰 그와 나 사이의 와인 향이 농밀해졌다. 어디선가 미끈한 초콜릿 냄새가 났다. 그의 등과 허리에 두른 팔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