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파편들

by 허무

가득 피어오른 모래 먼지 사이로 종소리가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는 그림자를 쫓아내고 운동장을 달궜다. 교실에선 하나 둘 자기 자리에 앉았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아이도, 물을 비 오듯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더러는 뒤로 돌아서 말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엎드려 자다가 종소리에 일어나는 중이었다. 창문으로 후끈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이들의 열기와 바람이 만나 교실은 마치 용광로 같았다.

착― 미닫이 문을 열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달아오르던 교실이 빠르게 식었다. 선생님은 문을 열었을 때,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금방 다시 웃는 얼굴로 교탁 앞으로 갔다. 조용해진 교실에는 뜨거운 바람과 아이들의 쌕쌕대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 말에 바로 정자세를 취하고 눈을 지긋이 감는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는 감는 눈에 잔뜩 힘을 주어 인상을 찌푸렸다. 또는 슬쩍 감는 척 하면서 실눈을 뜨거나, 한쪽 눈을 윙크하듯이 떠서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또 다른 아이들은 뭐라 뭐라 들리지 않게 지껄이며 어미 떠난 둥지의 제비처럼 목을 잔뜩 움츠려 좌우를 돌아보기도 했다. 교실 안의 어수선함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시 한번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뒤에 벌 받는 게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제각각 눈을 감았다. 자세도 점점 굳어갔다. 교실은 조용해졌다. 정적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창문을 통해 운동장으로 흘러갔다.


선생님은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겠다고 했다. 눈을 감은 아이들에게 머릿속으로 항아리를 하나 그리라고 했다. 모양과 크기는 상관없는. 그리고 이어서 선생님은 이번에는 다시 먼저 그린 항아리보다는 작은 주전자 같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입은 다물고 있었다. 어떤 아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항아리보다 작은 주전자에 물을 가득 채워서 항아리에다가 부으라고 말했다. 당황한 표정의 아이들도 보였다. 선생님은 소리 나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잔뜩 미간에 힘을 주어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했다. 꽤 시간이 지났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항아리 가득 차도록 물을 부은 사람들은, 다시 주전자로 그 물을 퍼내라고. 어떤 아이들의 눈썹이 한껏 치켜 올라갔다. 눈은 감은 채였다.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물을 다 비웠으면 다시 채우고, 다 차면 다시 비우고... 아이들의 표정이 오묘했다. 미세하게 고개가 책상으로 떨어지는 아이도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단 한마디도 이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지 않았다. 간혹 몰래 실눈을 떠서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손을 들거나 말을 하는 아이는 없었다. 교실에는 정적을 휘감은 후끈한 여름 바람과 땀 냄새로 가득 찼다. 선생님은 시종일관 미소 짓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