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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나마나

오후 일곱시의 나

by 고로케


작년 봄 아사오 하루밍의 <3시의 나>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저자인 아사오 하루밍은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아주 소소한 삶에 대해 짤막하게 글을 쓰는데, 담백하지만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문체에 반해 그녀의 책 여러 권을 읽었었다. 그중, <3시의 나>라는 에세이는 말 그대로 아사오 하루밍이 '오후 3시에 무엇을 했는지?'를 엮은 책이다. 즉, 오후 3시에 쓴 일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프리랜서 작가로 사는 그녀는 오후 3시에 참 다양한 일을 한다. 동네를 산책하거나, 좋아하는 식당에 가거나, 누워있거나, 고양이 뒤를 밟는다던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그런데 내 삶에서 오후 3시는 그렇게 다채롭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퇴근시간이 지난 오후 7시의 나는 조금 자유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단순히 오후 7시의 나를 떠올려 본다.


2019. 04. 17 -수요일- 오후 7시

글쓰기 강의실에 앉아 있다. 분당에서 2시 미팅이 있어 점심을 굶었다. 검색해보니 분당 ak plaza에 쉑쉑버거가 있단다. 30분 일찍 가서 쉑쉑을 먹으려고 엄청 기대했는데 경의중앙선이 늦게 와 쉑쉑은 커녕 커피 한 잔도 못 마셨다. 지하철이 붐볐다. 시간이 없어 저녁도 굶었다. 눈이 퀭하다. 선생님은 며칠 굶고 왔냐고, 밥은 먹었냐고 자꾸 큰 소리로 묻는다. 선생님을 포함해서 18개의 눈이 나를 본다. 그냥 멋쩍게 고개만 끄덕였지만 배가 고파서 글자는 까만 점처럼 보인다. 파란 펜으로 뭔가를 계속 적고 있긴 한데 뭘 적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배고픔은 이렇게도 치명적이다.


2019. 4. 18 -목요일- 오후 7시

수영장이다. 조금 늦게 들어가다가 반가운 얼굴을 봤다. 나보고 웃으라며 스마일 표시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여덟 개의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뿔싸, 나는 너보고 웃은 거 아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인사를 한다. 덕분에 오늘은 뺑뺑이 훈련이 아님을 감지하고 나도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몇 달 동안 같은 반이었던 아저씨는 나보고 자꾸 맨 앞에 서라고 한다. 더 열심히 해서 다음달에는 고급반에 가라고도 한다. 앞에 가기 싫어 '싫어요'라고 크게 말했다. 이 한마디로 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아저씨는 멋쩍게 허허 웃는다. 몇 바퀴 돌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내 뒤로 몰린다. 결국 또 1번이 됐다.


2019.4. 19 -금요일- 오후 7시

이런 젠장. 지하철 역이다. 6시 30분에 딱 나오려고 했건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팀장님이었다. 분명히 30분 전만 해도 '고로케, 오늘은 칼퇴 하는 거야.'라고 힘차게 말하고 나갔으면서 28분에 실적 파일을 보내달라 한다. 숫자가 다르면 또 한소리 들을 테니 다시 확인하고 보냈다. 오늘 공항철도에 사람이 많을까? 조금 늦게 타니까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 역에서 집까지 걸어갈까? 연등이 예쁘게 달렸고 불도 켜졌을 테니 걷는 길이 꽤 괜찮을 것 같다.


2019. 4. 20 -토요일- 오후 7시

교회다. 내일 부활절 칸타타를 위해 찬양대 연습을 하러 왔다. 하루 종일 목을 썼으니 저녁이면 오히려 목소리가 더 잘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다. 목이 더 잠긴다. 원래 성량이 작아서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 저녁이라 더 잠긴다. 지휘자 선생님은 두성을 내라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몸은 안 따라주는 느낌. 맨 앞줄, 그것도 가운데가 싫어서 2층으로 슬금슬금 올라갔다. 지휘자 선생님이 바로 내려오라 한다. 간주 시간에 지루해서 어깨춤을 췄다. 간주하는 동안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으라 했다. 가만히 서있기가 여간 힘들다.


2019. 4. 21 -일요일- 오후 7시

푹신한 문체어에 몸을 잔뜩 욱여넣고 감자와 같이 앉아 있다. 감자는 내 몸에 거의 붙어있다. 하루 종일 붙어있고, 하루 종일 안아달라고 땡깡을 피운다. 두부는 벌써 시야에서 사라졌다. 불러도 안 온다. 그래도 과자 먹자고 부르면 어디선가 잽싸게 달려온다. 저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과자 먹으려고 나를 이용하는 거 같다. 아니면 감자 돌보기가 귀찮아서 나한테 맡긴 느낌이다. 그래도 애들의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까만 눈동자 안에 더 까만 동공이 있다. 그 안에 내 실루엣이 보인다. 너희는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작은 두 눈과 작은 머리에 내가 가득 들어있을까?


2019. 4. 22 -월요일- 오후 7시

회사다. 야근이다. 오늘 의외로 예상치 못한 일이 많았다. 늘 그렇지만. 씨리얼을 먹고 집에 갈지 말지 고민이다. 본부장님이 큰 화분에 물을 준다. 저 화분은 내 자리에서 제일 가까운데 오늘 처음보는 기분이다. 잠시 ‘내가 저 화분을 관리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저렇게 큰 식물이 내 관리 부실로 죽으면 왠지 슬플거 같다. 7시 반에는 회사에서 나가야지 생각하는데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처음에는 형편없을 거 같아서 다 지우고 다시 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알찬 7시였네. 내년 일기는 <오후 0시의 나>로 기획해서 써봐야겠다. 365일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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