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생일선물 원정기

by 고로케


4월 20일. 누군가의 생일이다. 달력을 찾아보니 하필 그 날이 토요일이다. 금요일까지 완벽하게 선물을 준비해서 줘야겠노라 다짐했다. 그녀 생일을 일주일 앞둔 금요일에 한 다짐이다. 호빵맨을 좋아한단다. ‘호빵맨이라..’ 그녀가 평소에 즐겨 찾는다던 편집숍이 생각나 홈페이지에 가봤다. 빳빳한 캔버스 재질의 호빵맨 파우치가 보인다. 내 것까지 두 개를 주문하려 했는데 엉성하기 짝이 없는 홈페이지는 자꾸 ‘1개 이하의 상품만 담으라’는 헛소리를 지껄인다. 몇 번 시도하다 화가 나서 다른 사이트에서 주문을 완료했다.


선물증정일 D-2. 수요일이다. 불현듯 호빵맨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놈의 호빵맨은 언제 오는지 배송조회 버튼을 눌렀다. 아뿔싸, 제천 허브라는 단어만 보인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든다. 이러다가는 제 날짜에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외근 가기 전 서둘러 짐을 싸서 나왔다. 인기있는 양말가게라도 가서 양말을 사다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을 가듯 잰 발걸음으로 길을 걷다 회사 동료를 만났다. 어디 가냐 묻기에 양말 가게를 간다 했다. ‘그 양말 가게 사장, 자주 가게를 비우더라고. 한번 전화해보고 가봐.’ 설마 싶다. 그래도 나름 팁을 주는 동료 앞에서 전화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할 거 같아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홍대 ooo 맞죠? 오늘 가게 문 여셨어요?”

“아, 제가 사장인데요. 오늘은 3시에 문 열 거예요.”

“네? 그럼 내일은 출근하실 거예요?”

“내일은 1시에 문 열 거예요.”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가게는 취미인가? 굉장히 부자인가? 지금 가봤자 양말은 못산다. 외근도 늦을 거 같다. 동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애둘러 하고, 서둘러 지하철 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녁이 됐는데도 호빵맨은 여전히 제천에 있다. 뭐라도 주문해야 할까 싶어 서둘러 아이템을 찾기 시작한다. 형형색색의 곰돌이 양말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후기도 무척 좋다. 예상 배송일은? 서울시 마포구는 금요일 배송완료란다. 좋아, 주문하자.


선물증정일 D-day. 금요일이다. 정신 나간 호빵맨은 여전히 제천에 있다. 제천, 제천, 제천.. 도대체 제천 물류센터가 어떤 곳이길래 호빵맨이 옴짝달싹 못하는 걸까. 호빵맨은 글렀다. 대비책으로 주문한 곰돌이 양말도 행방불명이다. 다시 홍대 양말 집 사장님이 생각났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볼일이 있다며 잰 걸음으로 양말 가게를 갔다. 다행히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한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며 말을 건다. 사장님은 별 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스탬프를 찍는다. 양말을 한가득 사들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내 머릿속은 빨간 토마토 무늬와 딸기 케이크 무늬 양말로 가득 찼다.


저녁 7시. 곰돌이 양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약속을 잘 지켜 금요일에 도착했지만 이미 그녀는 퇴근하고 없다. 1층에서 양말을 뜯어보는데 주인을 잃은 곰돌이 얼굴이 처량해 보였다. 비죽비죽 자수로 된 곰돌이 얼굴이 유독 울상이다. 울지 마라.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내가 신으면 된다. 빳빳한 양말들을 가방에 대충 쑤셔 넣었다. 저녁 9시. 호빵맨의 행방이 궁금하다 못해 그리워서 배송조회 버튼을 눌렀다. 마침내 호빵맨은 제천의 덫에서 벗어나 인천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행복했다. 호빵맨을 받는 그녀의 표정을 생각해 봤다. 어서 부드러운 호빵맨을 그녀 두 손에 쥐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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