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너의 결혼식2

by 고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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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이 참 웃긴 것이 결혼식 일자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더욱 쓸쓸할 것 같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사실 조금 바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청첩장을 받기 위한 식사 자리에서 문득 '아, 결혼하지 너'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결혼식장에 초대된 중·고등학교 동창은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이었다. 그나마 한 명은 교회 반주자여서 예식에 참여할 수 없다 했다. 그는 결혼식장에 혼자 있을 내가 걱정됐는지 동네 친구부터 성당 친구까지 내 짝꿍을 섭외하느라 분주했고 거의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의 라인을 보냈다.


"난 너가 너무 걱정돼."

(읽씹)


"누구 데려올 사람 없어?"

"미쳤어?"


"너가 너무 걱정되는데 어떡하지? 진짜 데려올 사람 없어?"

(읽씹)


"식장에서 성욱이랑 있을래? 근데 성욱이는 아마 다른 사람 챙기느라 바쁠 거야. 오빠 쪽 사람들도 잘 아는 애라..."

"걔는 됐어. 불편해."

성욱이는 마블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애였다. 취향이 비슷하고 동문이라는 이유로 소개를 받아 알게 돼서 카톡도 하고 전화도 종종 하던 애였는데 사실 얼굴 한 번 본적 없다.


"그럼 은영이랑 수영이랑 같이 있을래? 성당 친구인데 내가 너 얘기는 아주 많이 해서 다들 널 알고 있어."

"얼굴도 모르는 애들이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사실 그랬다. 혼자가 편하다. 회사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과 웃으며 얘기해야 하는데, 주말, 그것도 결혼식 장에서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웃고 떠들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 장에서 만큼은 편하게 있고 싶었다. 사실 그가 걱정하는 것만큼 나는 혼자 있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식당에서 밥도 잘 먹고, 영화는 혼자 보는 걸 더 선호하고, 쇼핑도 혼자 한다.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긴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 그렇다. 사실 이 문제는 새 신부가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는 아마 내가 결혼식에 안 간다고 생떼를 피울까 봐 짝꿍이라도 만들어 주려 했던 거 같다.


다래끼를 짼 지 얼마 되지 않아 눈 화장은 일절 할 수 없었다. 사진에서 예쁘게 나오려면 화려한 화장을 해야 하는데 아쉬웠다. 옷이라도 화사해야겠다 싶어 핑크색 슬랙스에 연 하늘색의 셔츠를 꺼내 입었다. 머리가 너무 지저분한가 싶어 뒤로 넘겨 단정하게 묶었다. 귀걸이도 바꿔 끼웠다.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구두 중 제일 좋아하는 스킨 톤의 반짝이 구두를 신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하고 나니 아침부터 피곤했다.


식장에 들어가자마자 신부 대기실부터 갔다. 생각보다 새 신부인 그는 너무 예뻤다. 나를 한눈에 알아봐 줘서 좋았다.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라고 묻는 질문에 그냥 웃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몇십 년 동안 그를 만날 때 선크림 외에 화장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놀랄 만도 하다. 신부대기실에서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성욱이를 봤다. 생각보다 꽤 멀끔한 얼굴이다. 은영이랑 수영이도 봤다. 은영이는 나를 처음 봤으면서 자기 옆에 앉으라며 가방까지 치워줬다. 배려심이 남달라 머쓱했다.


억지로 미스코리아 미소를 짓고 있으려 하니 얼굴이 다 아팠다. 혼자 있고 싶어져 한 마리 늑대처럼 어슬렁거리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 어머니 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고로케야. 와줘서 고맙다. 그런데 너는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구나! 실물은 못 알아보겠네."

도대체 그는 평소에 나에 대해 얘기하며 무슨 사진을 보여준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식이 곧 시작할 즘이라 예식장으로 들어갔는데 태어나서 처음 본 커플의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다. 샘플용 영상인가 싶어 앉아서 넋 놓고 보는데 뭔가 느낌이 쌔했다. 아뿔싸! 다른 커플의 식장에 앉아있었다. 잽싸게 나와 본 식장으로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서 앞자리에 앉았다. 특이하게도 식장에 1인 식당 같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냥 거기 앉아서 식을 즐겼는데 꽤 괜찮았다.


부케를 받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아저씨가 '부케 받는 분 나오세요' 할 때 심장이 쿵 했다. 잘 받을 수 있을까? 적어도 두 번 만에 성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과적으론 세 번 만에 부케를 받았다. 첫 번째는 너무 높고 짧게 던져서 실패. 두 번째는 너무 길고 멀리 던져서 실패. 세 번째서야 겨우 성공했는데 노란 장미들이 너덜너덜하다 못해 몇 개는 봉우리가 떨어졌다. 낄낄거리며 떨어진 봉우리를 주워 장미 무더기 속에 쑤셔 넣었다. 사진작가 아저씨가 '부케 받는 친구 거기서 점프 한번 할까?'라고 예상치 못한 주문을 했다. 사실 당황했다. 그도 당황했다. 하지만 마치 토르가 묠니르를 들고 하늘로 승천하는 것마냥 뛰어올랐다. 모두가 깔깔 웃고 사진작가 아저씨도 한 번에 오케이를 외치며 아주 흡족해했다. 이런 사진은 왜 찍는 걸까? 정말 필요한 사진일까? 그는 갑자기 이런 거 요청해서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사실 나는 은근 재밌었다.


은영이랑 수영이, 그리고 그 둘 중 한 명의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남자 1번, 이렇게 셋이 같이 밥을 먹었다.


"OOO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옛날부터 맨날 무슨 내 유일한 친구라고 하던데. 그럼 같이 다니는 우리는 뭐야 대체?"

"그나저나 OO언니 이제 결혼했으니 우리랑 술 마시고 못 놀겠다. 남편이 싫어할 거 아냐."

은영이와 수영이는 마치 나를 십 년 전부터 알았다는 듯이 얘기했다. 남자 1번은 배려심이 넘쳐서 한 손에는 음식을 잔뜩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우리 것으로 추정되는 수저와 젓가락 총 12개를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세심한 배려심이 무척 마음에 들다 못해 존경심마저 들었다. 두 그릇을 비우고 싶었지만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화장을 해서 그런지 얼굴이 건조하기도 했고 미열이 올랐다. 세 명의 크루에게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그를 신부대기실에서 봤을 때 잠자고 있던 쓸쓸한 마음이 문득 고개를 들었었다. 신부대기실이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 가득 찼을 때 아무리 우리가 20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냈다지만 사실 서로 아는 것은 별로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쓸쓸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사람은 다 각자 살아가는 거고 절대로 소유할 수 없다고 위로하며 달랬다.


그의 신혼여행지는 하와이다. 결혼 축하 같은 지루하고 평범한 문자는 잔뜩 받을 것 같아 애써 평소처럼 생각나는 대로 쳐서 보냈다.


"돌아올 때 선물 사 와. 초콜릿은 나 안 먹으니까 사 오지 말고 특이한 거 사다 줘. 하와이 사진도 잔뜩 보내줘. 은영이랑 수영이한테 고맙다고 말도 해주고."

"그런데 너 너네 엄마한테 내 사진 뭐 보여준거야?"


부케는 지금 잘 말려지고 있다. 바슬바슬하게 잘 마르면 업체에 맡기던가, 아니면 직접 데코 해서 선물로 줄 예정이다. (이런 게 또 유행이라고 그가 넌지시 귀띔해줬다. '너 이거 원해서 받으라고 한거지'라고 물으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렇게 해달라는 의미인 거 같다.) 앞으로 그가 들려줄 결혼 얘기가 너무 기대된다. 즐거운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기를, 나는 그날 저녁예배에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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