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소문에 대하여

by 고로케


한강 일대에 바퀴벌레가 등장한단다. 상수 지역은 벌써 빨간불이 들어왔고 신촌, 홍대 지역도 위험 단계라 들었다. 6월 말 같은 5월의 날씨는 생태계마저 변화시켰다.


대체로 사무실은 조용하다. 유독 조용하게 업무를 하던 5시 경이었나. 갑자기 옆자리 팀장이 큰 소리를 지른다. 사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놀래키는 것, 즉 깜짝 놀람에 아주 취약하다. 깜짝 놀라면 욕이 먼저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숨겨둔 본능이 나오는 것 같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확신하는데 내 말투엔 분명 짜증이 묻어났을 거다. 얘기를 들어보니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비틀거리며 책상을 기어갔다 했다. 상상해보니 말도 안 된다. 모두가 그녀가 환각을 봤을 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에 있는 짐을 다 드러냈음에도 바퀴는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름 평화롭게 일을 하는데 내 등 뒤, 정확히 말하면 화장실과 탕비실 쪽에서 단말마 같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설마? 그렇다. 바퀴벌레였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크기였어!!"

"아, 젠장.. 나 소변이 마려운데.."


오금이 저렸다. 손가락 두 마디라니, 믿을 수 없었다. 6시 무렵 유일하게 남아있던 남자 과장이 바퀴 녀석을 때려잡으러 호기롭게 탕비실 쪽으로 갔다가 몸서리를 치며 다시 돌아온다. 살기가 서린 여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큰 종이컵과 A4용지를 이용해 바퀴를 잡아 헐레벌떡 나가며 말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야. 외래종인 것 같아!"

"저한테 말 시키지 말고, 저 멀리 내다 버리세요!!"


그가 사라졌다. 이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이미 나는 사색이 되어 두 발은 간이의자에 얹고 비스듬히 앉아 황급하게 메일을 쓰고 있다. 화장실은 지하철 화장실을 사용하자고 다짐한 상태였다.


"아니, 고로케. 이번엔 팔뚝만 한 크기였다며?"

"후.. 네, 무척 컸대요."


다음날 아침. <[필독] 바퀴벌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메일 한 통이 온다. 이런 쓸데없는 메일은 누가 보내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에서 메일을 열어본다. 내용은 베란다에서 바퀴가 들어오니 모두 그 문을 잘 닫으라는 내용이었는데 유독 이목이 끌리는 단어가 있다. '박쥐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


손가락 두 마디였던 바퀴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서, 그리고 팔뚝만 한 크기로 변했다. 정확히 하루가 지나고나니 이번엔 박쥐만 한 크기의 벌레가 되어 있었다. 몇 주가 지나니 새처럼 푸드덕 날아 옆 건물로 갔다느니, 거의 벌레가 아닌 비둘기 급으로 진화해 있었다. 얼핏 보면 그냥 웃고 넘길 재밌는 에피소드지만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 말이 이렇게 눈덩이처럼 변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전동화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은 본인의 생각이 들어가 왜곡되어 퍼진다. 이미 뒤틀린 소문을 만난 또 다른 누군가는 소문을 전하기 전에 한 번 더 뒤튼다. 결국 진실은 처음 사건을 접한 사람만 알게 된다.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톰은 소문 때문에 어머니를 잃게 된다. 뱀의 혀처럼 시작된 자극적인 소문은 금세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더 이상 어린 톰이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다. 그 역시 중년 시절 소문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돌아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고, 그제서야 주변인들에게 학을 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살을 생각한다.


살면서 소문에 휘말린 적은 없지만 (알고 보면 나만 몰랐을 수도 있다) 소문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을 살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세상에는 많은 소문이 뒤얽혀 있지만 가급적 소문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좋은 내용 아니면 굳이 소문의 중심이 되고 싶지도 않고, 내가 던진 한 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소문의 물꼬가 되지 않기를 더 간절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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