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계획한 것은 잘 이루고 있나요?

by 고로케


"나는 32살에 결혼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에 맞춰서 결혼한 것뿐이야."

오밤중에 불려나간 편의점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계획에 맞춰서 결혼했다고? 고개 숙여 초코에몽을 마시다 눈만 치켜뜨고 상대방을 쳐다봤다.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정말로 나는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얼굴.


"나도 34살 안에는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어. 그리고 40살 전에는 애도 낳았을 테니 해외로 나가 살려고 계획 중이야."

또 다른 계획남의 등장이다. 이미 계획녀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라 의자에 기대어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중이었다. 모두가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그 계획이 맞지 않으면? 그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너네는 그렇다면 플랜 A, B, C를 만들어서 인생을 사는 거야?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귀를 긁었다.


최근에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2019년 상반기도 다 지나가네요. 상반기에 계획한 것은 잘 이루고 있나요?"

‘계획한 거'라니,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니 회사 실적 말고, 개인적으로 2019년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 같다. 일기장을 뒤져보면 나올 법도 한데 귀찮아서 뒤져보기도 싫다. 2019년 상반기는 말 그대로 무계획하게 살았다. 나이가 들고 좋은 점은 얼굴이 제법 두꺼워졌다는 거다. 머쓱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작은 거짓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질문을 받았을 때도 태연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하하, 생각해보니 저는 계획을 안 세웠네요. 그런데 2019년 계획이 뭐였어요?"


20대에는 항상 계획 속에 살았다. 내 일기장에는 월별로 계획과 목표가 분명했다. 영어 공부하기(토플 XX점 이상), 스페인어 시험치기(DELE XX점 이상 받아 X등급이 되기), 3킬로만 빼자, 건강하기, 기도 열심히, 성가대 빠지지 말자 등 항상 계획이 있었다. 매월 말, 방구석 책상에 앉아 내가 하는 일은 '이번 달에도 목표를 채우지 못했군'라며 자책하고, 삭제하지 못한 계획들에 대한 미련을 갖는 거였다. 즉,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모여 매월 나는 한심한 사람이나 히피족처럼 갑자기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려 옆길로 새는 사람이 되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시달렸다.


연말에는 더 심했다. 연초 목표가 '취업하기'처럼 좀 더 생계에 연관될수록 연말에 느껴지는 자괴감이 더 컸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기특함은커녕, '또 이렇게 한심하게 살은 거냐, 너'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 것도 이 때문인 거 같다. 계획을 세울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 목이 조이는 느낌이었다. 자책감과 실망감을 느꼈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절제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원래 성향 자체가 성실하고, 아주 먼 미래이긴 하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긴 하다. 단지 나는 이 목표를 위해 밟아가는 단계들을 마이크로하게 쪼개고, 스텝 바이 스텝으로 나누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계획이 만들어 내는 부작용은 실망감이다. 계획하고 이루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좌절과 실망감은 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반대로 계획이 주는 이점은 성취감이다. 생각해보니 계획이 주는 달콤한 성취감은 학생 때 시험기간 빼고는 맛보지 못한 거 같다. 변명을 하자면 대학교를 벗어나면서 하는 일에 변수가 많아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32살의 나이에 결혼을 계획대로 하고, 아이를 계획대로 낳고, 이민을 계획대로 하겠다는, 혹은 했다는, 친구들의 말이 놀랍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고 솔직하게 부럽기도 했다.


<기획자의 습관> 저자 최장순은 우리 모두가 기획자라고 말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지, 점심에는 어떤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 건지, 어떤 커피를 마실 건지, 아주 사소한 거지만 우리는 매일 일상을 기획하고 선택한다. '반복되는 생활'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 조건이지만, 현실에 순응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내일의 가장자리를 넘어 내일로 나아갈 노력을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고 각자의 능력이라 했다. 계획도 그런 거다. 매일의 계획이 있고, 장기간의 계획이 있다. 저들은 나름 미래를 기획하고 내일로 나아갈 노력을 한거다. 아무것도 없는 미래가 아닌, 두 손 가득 계획된 행복을 쥔 미래를 위해.


모기가 많다며 괜시리 투덜거리다 홀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곧장 다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34살에는 대학원 다니려고. 아직 뭘 공부할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올해 생각해볼게.' 나만의 계획이 시작됐다. 미래의 내가 실망할 수 있다. 그 씁쓸한 마음을 너무 잘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계획을 시작하고자 한다. 먼 미래인 거 같지만, 22살의 내가 10년 뒤 32살의 내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에 비하면 2년의 시간은 사실 아주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계획 워밍업으로 2년 뒤의 계획보다는 당장 2019년 하반기 계획을 세워야겠다. 연말의 내가 더 큰 실망을 하지 않도록 아주 간단한 계획부터 세워볼까? 가령 '3킬로 감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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