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생각과 몸

by 고로케


수영을 가지 않았다. 아마 수영장에 한번 들어가고 나면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수영장에 가는 화, 목요일 5시가 되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갈 수 있지만 푹 젖어 몸에 딱 맞게 된 수영복을 벗기가 힘들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은 채로 볼일을 봐야 하는 찝찝함 때문일까. 도대체 뭐가 내 배를 아프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생각이 몸을 지배한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린이 도서였기에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프다고 생각하면 진짜 아프고, 안 아프다 생각하면 아프지 않게 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 생각이 몸을 지배한 적이 없었다. 더욱이 오늘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수영을 좋아하는데 도대체 내 배를 아프게 하는 건 어떤 생각이지? 단순히 수영장에서는 화장실에 가기 힘들다는 압박 때문인가?’


지난 몇 주는 참으로 힘든 주였다. 생각해보면 8월이 참 힘들고 길었다. 부당하다 생각했던 한 주가 지나고, 더 부당하다 생각되던 한 주도 지나고, 그렇게 3주 정도가 지나갔다. 그랬다. 나는 ‘부당하다’라는 생각에 갇혀 살았다. 누가 말만 해도 고슴도치처럼 ‘옘병, 이걸 왜 내가 해야 해?’라는 생각이 가시 돋친 듯 떠올랐다. 사람들이 ‘고로케와 친한 사람이 퇴사를 해서 기분이 좋지 않나 봐’라고 생각하는 것도 싫었다. 여기는 중.고등학교가 아닌데, 나와 친한 사람이 퇴사를 한다고 내가 근 3주 동안 기분이 안 좋을 이유는 없다. 이럴 때마다 사람들은 참 표면적인 것, 즉 껍데기만 보고 판단한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설 곳이, 발 디딜 곳이 없어지는 것 같아 불안할 때가 있다. 요즘 들어 부쩍 그랬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제2의 취준생이 된 것 같다. 끊임없이 취업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또 다른 장소를 찾아 헤맨다. 2016년 약 10여 개의 휴가를 면접과 필기시험으로 날리면서 ‘도대체 뭐 하는 거냐 너’라고 생각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내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하다.


유병욱은 <평소의 발견>에서 사람은 물과 같아 폭포가 되기도 호수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어느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도 모양새도 성격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팀에서는 막내로, 또 다른 곳에서는 중간 관리자로, 교회에서는 성가대 총무로, 수영장에서는 스타터로, 필라테스에서는 고통만 외치는 철없는 여자로 분류된다. 이렇게 다양한 자아가 있는 사람을 단순히 한 명의 고로케로 분류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이번 주 글은 주제가 없다. 퇴근길에 카페에 앉아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운동도 농땡이 쳤겠다, 원 없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몇 주의 고난에서 나를 구원한 것은 아주 우연하게 가게 된 기도회였다.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내 안의 성령도 가물어 갈 때쯤 집 앞 교회 저녁예배에서 기도회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됐다. 화,수,목 저녁 7시 30분까지 교회에 가기 위해 과감하게 출퇴근 시간을 8-17로 변경했다. 8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집에서 새벽 5시에 나왔다. 처음엔 너무 피곤해서 포기할까 싶었지만 지금은 만족이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에 있어 회사도, 사람도 떠나면 그만이라고 얽혔던 생각이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됐다. 그걸로 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주도의 기사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