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이 12월 15일이니 16일 남은 셈이다. 신기하게도 매년 연말은 감기에 걸렸던 것 같다. 2017년 30, 31일에는 지독한 편두통으로 회사를 나가지 못했고, 2018년 30, 31일에는 독감 초진을 받아 은둔생활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원치 않게 일찍 감기를 앓아 연말에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1월 1일 처음 듣는 음악대로 그 해 사랑이 이뤄진데'라는 말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송구영신예배를 가므로 매년 새해 처음 듣는 음악은 찬송가다. 그럼에도 집에 와서 자기 전에 들었던 음악은 퀸의 'love of my life'였다. 'oh, bring it back, bring it back, don't take it away from me, because you don't know what it means to me' 구구절절한 외침이 귀에 꽂힌다. 가사대로 내 1년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애절한 사랑과 이별을 했어야 했는데 딱히 그런 일도 없었다. 애석하게도 거절하기 귀찮아서, 거짓말하기 미안해서 몇 번 나갔던 소개팅에서도 맘에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매년 일기를 썼는데 올해는 단 한 번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반성 중이다. 왜 그랬을까? 확실히 일기를 쓰지 않으니 기억에 남는 하루가 하나도 없다. 뭔가 내 손으로 끄적이고 기록한다는게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나만의 방식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2019년은 미래의 고로케에게 기억나지 않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나쁘지는 않았던, 하지만 무엇이 좋고 싫었는지 알 수는 없는 그런 한 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안타깝다.
대학교 4학년 때였을거다. 눈다래끼가 정말 어마 무시하게 생겼다. 같은 눈에 계속, 계속... 그 당시엔 인턴십과 취업이 겹쳐 스스로도 스트레스가 컨트롤이 안 될 정도였는데 그 모든 분노가 눈으로 올라왔었다. 그 뒤로 몇 년간 눈다래끼와 작별을 고했건만 올해 5월인가 오른쪽 눈에 함지박만 한 눈다래끼가 나기 시작했다. 눈을 뒤집어서 짜고, 아물고, 짜고, 아물고를 반복... 팀장과 팀원들이 눈다래끼가 왜 자꾸 나냐고 물어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요'라고 짜증 냈던 내 모습이 생생하다. 물론 이 시기에 나는 도대체 내가 왜 하고 있는지 모를 웹 스크립트 관리와 정리를 하면서 별 거지 같은 시스템과 운영에 염증을 느꼈던 때였다.
2월부터 3월 사이 토요일마다 합정에서 진행하는 그림 수업에 참석했다. 그림! 중학교 때 그림 동아리에 갔었다가 열등감만 느끼고 1년을 못 버티고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에 대한 꿈이 아직도 있었다.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블로그에서 본 작가가 그림 수업을 한다기에 신청했다. 35만 원 정도 줬던 것 같다. 시작은 좋았으나 너무 호기로웠다. 토요일 매주 2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을 위해 나는 11시 반이면 집을 나가야 했다. 멀어도 너무 멀다. 옘병천병 나중엔 욕이 나왔다. 5시에 끝나면 집에 오면 7시 반. 체력도 여유도 없으니 그림은 꼴도 보기 싫어서 마지막 수업을 가지 않았다. 반면 글쓰기 수업은 너무 재밌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야기보따리를 가득 들고 와 풀어냈다. 사람 사는 건 다 제각각이라지만 별 모양, 동그라미 모양, 네모 등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가슴이 뛰었다. 내향적이기만 한 내가 이런 거에 흥분을 하다니 또 다른 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2018년 겨울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뮤니크님에게 '나도 글쓰기 모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고 싶음 만들어서 해라'라고 말해서 호기롭게 알았다 했지만 차일피일 지연되다 첫 크루를 2월쯤에 모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우리는 4명에서 5명으로 인원도 늘어났고 무려 열 달을 함께 보냈다. 열 달 동안 누군가는 아빠가 될 준비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12월에 연차를 10개 내야 해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고, 누군가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홀로 큰 행사를 치르느라 극한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신기하게도 글을 읽으면서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됐고 이해하게 됐다. 이제는 이해 못 할 사람들에게 글을 하나 써달라고 하고 싶다.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군가 2019년을 한 마디로 정리 해달라면 '행복했어요' 혹은 '재밌었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포항에서 춥다고 옘병 떨어 친구가 털달린 내복을 사준 것도, 제주도 여름휴가에서 선글라스가 녹아 휘어진 것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모기 새끼가 바지를 뚫고 다리를 엄청 뜯은 것도, 광고 대행사 미팅에서 이상한 공황장애가 온 것도, 행사를 뛰다 오른쪽 엄지발톱이 사망한 것도, 강릉 여행에서 1분 남기고 ktx에 무사 안착한 것도, 월남쌈 소스를 시켰더니 카야 잼이 온 것도, 콩알만 했던 감자가 청년이 된 것도, 길거리에서 짝귀를 만나 뻥튀기를 줬던 것도, 소개팅에 가기 싫어 장염에 걸렸다 구라를 친 것도, 퇴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도, 스텝 데이에 노래방에서 거짓말을 열창했던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떠난 것도,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도, 모든 게 다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