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모습을 잘 나타내는 노래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입니다. 이유는.. 제 속엔 제가 너무 많아서요. 상황에 따라 제 성격과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누군지 몰라요."
워크샵 분위기가 조금 싸해졌다. 혹자는 '고로케는 정말 승진 따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 자유롭게 말한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나는 정말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2015년 4월 1일 입사 후 직장에서의 슬로건은 '최대한 의뭉스럽게 행동하기. 나는 연기자다'였다. 즉, 내가 어디서 뭘 하고 누굴 만나는지 회사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숨기자는 의미다. 쓸데없이 엮여서 질문받고 대답하고 감정상하고.. 상상만 해도 피곤한 일에 엮이긴 싫었다.
어느 순간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최대한 흐린 기억을 되짚어보면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때였다. 어차피 나는 떠날 날짜를 받아둔 시한부 인생이기 때문에 굳이 회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이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정은 마음만 상하게 할 뿐. 스스로 쿨녀가 되자고 다짐했다. 정규직이 된 후 '내가 마음을 먹어야만' 떠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어쩌다 보니 동료들과 종종 저녁을 먹게 됐고 마음을 나눴고 그사이 몇몇은 동네 친구들보다 더 친해졌다. 이런, 큰일이다. 완벽하게 마음을 줘버렸다.
그럼에도 100% 나를 드러낼 수 없는 건 정말로 내 속에 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조차 지금 내 원래 모습을 모르는데 사람들에게, 그것도 회사 사람들에게 내 진짜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나. 예전부터 나는 그랬다. 상황에 맞게끔 태도를 바꿨고 말투도 바꿨다. 아주 편한 친구 앞에서는 방귀도 뿡뿡 끼고 징징거리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꺼야 꺼야 잘할 거야, 혼자서도 잘 할 거야'라는 어린이 티브이 프로그램 노래처럼 혼자서도 척척 뭐든지 해내는 기계처럼 행동했다. 모두가 다 그런 거 아닌가, 우리 모두는 죽는 날까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춤추는 희극인 아닌가.
작년 본부 워크숍 시간이었다. 성격 테스트라기보단, 본질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본부 전체를 통틀어 나 혼자 4번 유형이 나왔다. 4번은 개인주의자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는 아니고,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예술인 유형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교육하던 선생은 나를 보고 예쁘게 생겼다느니, 4번 유형은 조직생활을 할 수 없다느니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주목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특히나 '조직생활을 할 수 없는 유형'이라는 말이 이명처럼 귀에 맴돌았다.
늘 그렇듯 이런 일들은 금세 내 머리 뒤편에 자리 잡아 케케묵은 곰팡이처럼 묵혀졌다. 하지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라는 가시나무 노래가 마음에 와닿으면서 가시처럼 막힌 저 말이 다시 내 눈앞에 맴돌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데, 나는 이렇게 많은 나 중 한 명을 상대방 특성에 맞게 선택적으로 골라 상대방에게 맞출 뿐이다. 평소엔 이런 연기에 별 피로함을 못 느꼈는데, 요즘은 내가 보여준 모습이 정말 나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평소의 배로 피곤함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다. 이것도 내가 만든 현상이다.
내 안의 그년은 누굴까? 진짜 나는 누굴까? 그건 나도 모른다. '사람은 물과 같아서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호수가 되기도, 폭포가 되기도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평소의 발견>은 정말 괜찮은 책이지만 내 마음을 울린 여럿 문장 중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역량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발전하거나 퇴보하듯, 사람도 그렇다.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제각각 변하는 게 사람이다. 적어도 서른셋의 고로케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