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생일도 그냥 지나는 날 중 하나라던데 그 말을 30대가 들어서 체감하게 되었다. 20대에는, 특히 20대 초중반에는, 물줄기처럼 쏟아지는 축하 속에서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야'라는 행복감에 젖어있었다면 30대가 되니 만사가 귀찮아 생일날에는 카톡을 삭제하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1년에 한 번 적응되지 않는 쑥스러움을 한껏 맛보면서 감사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도 했다.
"생일 전에는 휴가 안낼거야?"라는 다수의 질문에 사실 고민하기도 했지만 나는 전형적인 인프피 사람이라 생일 전 날 토악질을 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22살 미국에서 나 홀로 블루스 문화에 적응 못해 삐거덕 거리는 막춤을 춘 뒤 '파티 문화는 나와 맞지 않음'을 뇌에 입력한 후에 시끌벅적한 장소나 파티는 완벽하게 피하면서 잘 살아왔기도 했다.
여하튼 그렇다. 생일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오빠가 나를 만난 특별한 날이고, 연인에게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한 하나님께 감사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일 뿐 사실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날은 아닌 30대의 고로케였다. 6월 27일,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 전 날 사랑니를 뽑고 찌그덕 거리는 아픔 속에서 일어났어야 할 아침이었는데 병원 예약 변경으로 루틴한 토요일처럼 느지막이 눈을 떴던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침을 반겨주는 건 어김없이 R군이었다.
R군은, 내 기억이 100% 맞는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였다. 당시 기억나는 건 대부분 성장 속도가 느린 남자애들에 비해 R군은 드물게 13살 나이에도 키도 컸도 덩치도 컸던 기억이 난다. R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 있는데 눈이 작고 야구부에서나 할 까까머리를 했다는 정도. 그랬던 R군이 나와 유일하게 연결된 지점은 같은 날 태어났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 반에 6월 27일에 태어난 아이는 나와 R군, 그리고 C양이었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보낼 때만 해도 휴대폰이 지금처럼 발달된 시절은 아니라 갸갸호호 입으로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우리 동네는 워낙 작아서 다들 한 블록 건너 한 블록에 있는 고만고만한 학교에 다녔다. 미남이었던 모군이 학교 신문에 등장했네부터 여우 같던 모양이 드디어 남의 남친을 꽤어 냈다는 등, 지금 생각하면 가십걸 못지않은 찌라시와 소문이 뺨치던 시절이었다. 여하튼 R군에 대한 존재는 까맣게 잊었고 20살, 정확하게 말하면 20살이 막 된 한겨울에 초등학교 동창회라는 명목으로 아직 젖살이 남은 아이들과 옹기종기 동네 맥줏집에 모이게 되었다.
다들 나처럼 멋을 내고 왔는지 까까머리와 어리숙한 모습이 있던 아이들이 어느새 키도 훌쩍 크고 나름 고등학교를 막 벗어난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맥줏집 안에 바글바글 앉아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R를 다시 만났고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싸이월드라는 곳에서 간간이 인사를 나눴다. R는 키가 크면서 몸이 늘씬해졌을 뿐 사실 그렇게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까까머리였고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끝이었다. 20살 그 겨울 호프집에서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엔 골뱅이를 들고 있던 그날 이후 나는 R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이후로 그와 연락조차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6월 27일을 빼면 말이지. 신기하게도 20살 이후 6월 27일 아침엔 항상 R군의 축하 문자로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엔 '생일 축하해. 난 C양 연락처가 없는데 생일이 같은 C양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해줘'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C양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아니면 그도 내가 C양 연락처를 모른다는 걸 눈치챘을 수도 있다.)
그가 군대를 갔다 오고 난 세월을 빼면 이상하기도 한 우리의 생일 축하는 거의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매년 그가 먼저 나에게 축하를 건넨다는 사실을 나는 올해 처음 알게 되었다. 6월 24일 오전, 늘 그렇듯 머리를 감다가 문득 생각난 건 R군이었다. (나는 두피를 자극하면 갑자기 잊고 있던 일들이 떠오른다) 항상 R군이 먼저 축하를 해줬으니 올해는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자는 큰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아침까지 잠에 취해 있었고 그의 문자를 받고 한발 늦었음을 깨달았다.
우리 관계가 특별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서로 축하하는 것 외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얼굴 안 본지는 13년 됐다) 1년에 한 번, 우리가 연락하는 날은 서로의 생일일 뿐. 서로가 결혼을 했는지, 애가 있는지, 직장엔 다니는지, 어디 살고 있는지, 그런 것도 서로 묻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단 한 마디만 남길 뿐이다. 지금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그의 카톡을 곱씹어 보니 R군은 내 생사 여부를 1년에 한 번 확인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또 드는 생각은 그와의 추억을 하나 더 만들고 싶다는 거. 이제는 매년 12월 31일, 내가 먼저 그에게 신년축하 문자를 보내야겠다.
'R군아, 2020년은 코로나라는 옘병천병 때문에 힘들었지? 그래도 우리 2021년엔 더 열심히 살아보자! 호호!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