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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20. 2020

힘이여, 솟아라

지난여름, 2학기 강의를 준비하면서 방 배치를 바꿨다. 학기초에 했던 일을 학기말에 정리해서 쓰다니, 나도 참 게으르다.


아무튼 침대와 책상 위치를 바꾼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놓고 싶었는데 이사할 때는 그냥 되는대로 놨었다. 마음에 드는 배치가 아니라서 별로였다. 특히, 카메라를 켜고 온라인 회의나 강의를 할 때면 뒤 배경이 너무 신경 쓰였다. 책상이 벽에 붙어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ZOOM에 뒤 배경을 바꾸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어색한 화면이 더 이상해서 그 기능을 사용하진 않았다. 얼굴에 꼭 구멍이 생기더라. 필수로 카메라가 필요할 때는 노트북을 가지고 자리를 옮겨서 했는데 그것도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전후 배치도. 책상 위에 있던 물건(컴퓨터, 자료, 책 등)들을 방 밖으로 옮기고 침대를 돌리면서 시작. 다시 봐도 정말 어떻게 했나 싶다. ⓒ고상(고양이상자)


결론은 처음에 놓고 싶었던 대로 책상과 침대 위치를 바꾼 거다. 좁은 공간에 여유 없이 딱 맞는 가구라서 맞추는 게 어려웠다. 혼자 옮기니 한쪽 들었다가 반대로 가서 그쪽을 들어야 해서 더 오래 걸렸다. 뭔가 걸리면 멘붕. 방이 비었을 때 안쪽부터 채우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것저것 있는 상태에서 가장 큰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짐은 왜 이리 많은지. 방 밖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정신없었다. 영상으로 남겨놓을 걸. 아쉽다. 나의 개고생을 기록으로 남겼어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 자는 퀸 사이즈 침대는 정말 꿈쩍도 안 해서 누운 상태로 벽에 지탱하면서 발로 밀었다. 시작했으니 한 거지, 다시 할 생각은 없다. 역시 뭐든지 아는 게 가장 무서워. 모를 때 해야 해.


퇴근한 남편이 놀라며, "어떻게 혼자 이걸 했어. 같이 하지."라고 했지만, "여보랑 했으면 싸우느라 더 오래 걸렸을 거야."라고 했다. 침대 헤드가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이삿날에도 버리자는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같이 옮겼으면 분명 그 소리를 다시 들었을 거다. 난 침대의 그 부분이 너무 좋은데 그걸 이해 못하더라. 지금은 책상 뒤에 놓아서 작은 짐들을 얹어놓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 잘 듣던 남편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아무튼, 결국 몸살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어느 정도 공간이 분리되어서인지 전보다 집중도가 훨씬 높아졌다. 책상과 침대 사이에 화이트보드 같은 것을 세워서, 아이가 침대에 앉아 그곳에 낙서도 하고 공간 분리도 확실하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지만, 마땅한 상품을 찾지 못했다.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


서재를 갖는 게 꿈인데 그 꿈을 이루는 단계라고 생각하니 기분도 좋다.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올까? 올 거야. 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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