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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딸 바보의 탄생

어린 시절에 봤던 아빠는 언제나 바빴다. 그 시대 아버지가 거의 그랬던 것처럼 아빠에겐 회사가 전부였기 때문에 아빠와 시간을 보내며 노는 것이 쉽지 않았다.



| 새마을호


아빠가 잘 놀아주지 않는다며 내가 서운해할 때면, 아빠는 내게 이 이야기를 꼭 해줬다. 항상 바빴던 아빠한테는 그게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나 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지방 출장 중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남자가 출산 과정에 없던 게 그리 잘못은 아니었다니,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말이다.


엄마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아빠는 서울로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새마을호를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평소 절약을 중시하던 아빠가 새마을호를 탄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사실 엄마 입장에서는 별로인 남편이었을 거고,  역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 출산 전에 같이 있어야 하는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빠와 아빠 지인에게는 정말이지 역사적인 순간이었단다.



| 아빠가 지은 내 이름


내가 태어날 즈음, 양가에서는 내 이름 짓기가 한창이었다고 한다. 아빠 본가에서는 오랜만의 딸이라고 돌림자를 따른 이름(여자는 돌림자를 쓰지 않았음)을 지어주셨고, 엄마 본가에서는 첫 딸이라 한글 이름(외할아버지가 한글 학자)을 지어주셨다. 모두 예쁘고 의미 있는 이름이었지만, 전자는 색깔과 관련 됐고, 후자는 성과 연결되면 의미가 이상해져서 둘 다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아빠는 한글로 내 이름을 지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초등학생 때 놀림받기도 했지만 내 이름이 싫지는 않다. 이 이름도 그렇게 놀림받았는데 각 본가에서 지어주신 이름이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다. 


아무튼, 이름 바꿔달라고 펑펑 울기도 많이 울었다. 지금은 연예인 이름도 많아져서 특이하진 않지만,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라 중성적인 이름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아빠는 내 이름을 본인이 지었다는 것을 무척 뿌듯해하셨고, 이름 짓는 과정을 말할 때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아이 이름은 내가 꼭 짓고 싶었다.



| 부족함 없던 어린 시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 본가 쪽에서 오랜만에 태어난 딸이라 아가 시절엔 사랑 듬뿍 받으며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 덕분인지, 어른들 뿐 아니라 사촌 오빠들에게도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아빠의 일이 잘 풀렸던 시기와 엄마의 얼리어답터 성향이 맞아 우리 집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최근 일반적인 세탁기 형태로 자리 잡은 외제 드럼 세탁기가 집에 있었고, 바나나 등의 간식을 쉽게 먹었을 정도니까.


다만 엄마와 아빠의 의견 대립이 많았다. 가장 문제 되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학원 문제였다. 아빠는 내가 원하는 곳에만 보내자는 입장이었고, 엄마는 어릴 때 많이 배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엄마는 여성이라서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던 한을 나를 통해 풀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 바로 아래 남동생인 큰 외삼촌은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엄마 본가에서는 그 시절에 맏딸(엄마) 포함, 딸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내긴 했지만, 엄마는 더 배우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엄마는 항상 뭔가를 배우고 만들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런 엄마 덕분에 학습 관련된 것은 기본에, 발레, 한문, 주산, 웅변, 태권도, 피아노, 미술  많은 학원을 다녔다. 엄마의 필요성에 따라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엄마가 하라는 대로 따라다녔고 엄마가 원하는 만큼 결과를 얻으려 노력했다. 아빠의 사업이  좋아지면서 학원도 그만두게 되었는데 내심 기뻤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내가 다니고 싶다고  곳은 컴퓨터 학원이었는데 '그때 계획했던대로 진로를 선택했으면 미래가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 결핍의 부작용


어릴 때 그렇게 다녀서(돈을 많이 써서) 인지 나중에 내가 무엇인가 배우고 싶을 때 배우기 어려웠다.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학원도 다니고 싶었고 과외도 받아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큰가 보다. 성인이 된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결핍을 채워보려 노력했지만, 이미 부모덕에 채워진 사람과의 차이가 너무 커버려서 아쉬움에 부러움까지 더해졌다.


나는 나중에 아이가 배우고 싶다는 것이 생기면 지원해주고 싶다(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곳저곳에 아이를 보내지 않으려 한다. 세상이 워낙 험하니, 5살이 되면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태권도를 보내볼까 했는데, 아이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경험상 발레는 별로 가르치고 싶지 않은데 발레복 입고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어린이집에서 접하게 되니 관심이 생긴 듯하다.


공주 동화책을 읽어준 적도 없고 그런 애니메이션도 보여주지 않아서, 공주 옷이나 핑크색에는 관심조차 없던 아이가, 어린이집 언니와 친구들이 그런 옷을 입고 다니니 관심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어린이집에서 접하는 책이나 영상도 영향이 있겠지만, 우려했던 대로 또래 문화를 무시하기 어렵다. 아무리 내가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니까. 딸 의견을 잘 들어 보고 나서, 날 따뜻해지면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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