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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아빠에게 들었던 나의 어린 시절

아빠는 가끔,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몇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딸의 기록을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나 보다. 디지털로 모든 남기기 편한 세상이 조금 더 빨리 왔다면, 아빠의 영상이 하나라도 남겨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아쉽다. 시간이 갈수록 아빠의 목소리가, 아빠의 표정이 잊히고 있어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딸의 행동을 볼 때, 아빠의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네가 저랬어.”라는 말을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시부모님이 딸의 모습을 예쁘게 바라보시면서 남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실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저리다. 나도 아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 아빠에게 안겨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 욕조에서 참방참방할 때


아빠는 아가인 나를 목욕시킬 때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담고, 그 안에 나를 넣으면 가만히 앉아 아빠를 꼭 붙잡고 있다가, 참방참방하면서 아빠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런가 보다.’하고 말았지만, 남편과 함께 아가를 목욕시키면서 그 이야기가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처음엔 무서워서 아빠나 엄마를 꼭 붙잡고 있다가, 따뜻한 물과 따스한 손길에 안정을 찾고, 그다음에 물놀이를 참방참방하기 시작하는 것. 귀엽기도 하지만, 내게 의지하는 아가의 모습을 보며 책임감도 생긴다. 아빠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겠지.


지금은 커서 이젠 물에서 첨벙첨벙 노는 딸이지만, 쌀 씻을 때면 자기도 해보고 싶다며 그릇 밖으로 물을 안 튀기게 조심조심 참방참방하곤 한다. 그럴 때면 욕조에서 참방참방하던 아가가 떠올라 웃음 짓게 된다.



| 아빠라고 불렀을 때


아이들은 보통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때, 반사적으로 “엄마”를 부른다. 그런데 나는 “아빠”를 불렀다고 한다. 엄청난 학습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딸에게 "아빠"를 알려주고 나서 딸이 한참 "아빠"를 반복할 때, '내가 이랬구나.', '아빠가 이렇게(내가 아가를 바라보듯이) 나를 봤겠구나.'싶어서 찡하곤 했다.



| 비 오는 날, 장화에 튄 흙탕물 닦을 때


비 오는 날, 딸은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는다. 비 속에서 뛰어다니며 참방참방하는 걸 좋아하는데 놀다가도 장화에 흙탕물이 튀면 멈춰서 닦아달라고 한다. 예전에 내가 그랬다는 이야기를 아빠한테 들었다. 정말 신기하다.


장화를 레인부츠라고 해야 하지 않냐고 했던 어떤 사람이 갑자기 떠오르네.



| 안전벨트 할 때


나는 겁이 많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차에 탈 때면 안전벨트를 꼭 했다고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안전벨트를 꼭 하는 분위가 아니었음에도, 아빠가 하지 않아도 된다 해도 나는 꼭 고집을 부렸단다.


내 딸도 그렇다. 특별히 가르친 것도 아닌데 차의 안전벨트는 기본이고, 유아차의 안전벨트도 꼭 한다. 지금은 커서 안 해도 되는 식당 어린이 의자에 있는 것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기특하다. 안전은 중요하니까.



| 절약할 때  


아빠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절약"이었다. 보고 배운 것이 있다 보니, 나도 그렇다. 집의 전등은 다 끄고 다니고 안 쓰는 전기 제품의 코드는 뽑아 놓는 편이며, 티슈 등도 한 장씩 쓴다. 결혼 초기에 남편과 그런 부분이 너무 달라 힘들었는데 요즘은 남편도 불을 잘 끄고 다니고 물품도 아껴 쓴다. 기나긴 학습의 결과다.


딸이 손을 씻을 때 비누칠하는 중에는 물 잠그라고 했더니, 안 그러는 사람을 보면 그래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나보다는 융통성 있게 자랐으면 좋겠다.



| 말 타고 싶어 할 때


동네에 말 모형이 달린 놀이 기구(이름이 뭔지 모르겠다.)가 오는 날이 있었다. 평소에 뭔가를 조르지 않던 내가, 유일하게 요구했던 게 그것을 태워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기구를 가져오는 할아버지도 내가 좋아하는 걸 알아서, 우리 동네에 오면 우리 집 앞에 대기하셨을 정도였다. 진짜 말을 타보고 싶기도 했다.


아가들이 타는 실내 모형 말이 있다. 어린이집이나 병원에 있는데 언니 오빠들에게 밀려 못 타길래 두 돌 즈음에 딸에게 모형 말을 사줬다. 한동안 정말 신나게 탔다. 그러다가 4살이 된 요즘은 말을 타고 싶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개장을 못하고 있는 승마장이 있던데,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면 한번 알아봐야겠다. 정X라만큼 지해 줄 순 없지만,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꼭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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