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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아빠에겐 IMF가, 내겐 사춘기가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엄마와 오빠를 내 마음에서 정리한 이유 중에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오빠는 조기 유학을 갔고 엄마는 그곳에 왔다 갔다 했다. 그때 지출한 돈이 엄청날 거다. 오빠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가면  안 되냐고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딸을 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언젠가 엄마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고 싶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또 다른 계기가 생기겠지.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빠는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에 IMF까지 겹쳐, 우리 집의 사정은 극도로 안 좋아진 후, 청소년기의 기억 속 아빠는 TV 보며 소주 한잔하던 무료한 모습으로 변했다.



| 교사에 대한 불신


어느 날, 몸살이 난 내게 아빠가 미역죽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준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 그걸 먹고 있는데 담임교사가 와서 뭐 먹냐고 했다. 아빠가 해줬다고 하자, "아빠 노나 봐? 자랑이다." 이렇게 말했다. 그 교사는 그런 식으로 툭툭 내뱉으면서 웃음을 유발하던 사람이어서 재미있다며 좋아하던 친구도 많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듣게 하는 아빠도 싫었다.


수학여행을 간다는 공지를 듣자마자, 너무 비싸서 안 가겠다고 생각했다. 아빠한테 말하기도 미안했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잠만 자서 그다지 친한 친구도 없었다. 그런데 담임교사(위 사람과 다른 사람)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추억, 다시 못 올 시기의 소중함 등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공허한 좋은 말만 되풀이했다. 아빠가 친구를 통해 알게 되어서 결국 가게 됐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했다. 나중에 수학여행의 학생 참여가 담임교사 평가 점수에 들어간다는 걸 알고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여러 경험을 하며 교사에 대한 불신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교사가 없다. 내 딸은 나와 달리, 믿을 만한 진짜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 아빠에게 준 상처


아빠는 내게 항상 미안해했다. 그 미안하단 말이 너무 듣기 싫어서 모난 소리를 한 적도 있고,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간 적도 있다.


친구들이 학원에 같이 다니자고 해서 테스트를 본 적이 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았는데 그 정도 점수가 나온 게 대단하다며 점수를 더 높여보자는 학원장의 영업(?)에 넘어가 아빠에게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학원비가 부담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아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는 내용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다니는 시간이 좋았고, A반에 포함됐을 때는 성취감도 있었다. 하지만 달마다 돌아오는 학원비 납부일이 너무 부담되어서 몇 달 다니지 못했다.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서 오래 다닐 생각은 안 했지만 그래도 타의로 그만두게 된 게 아쉬워서 괜히 아빠한테 성질을 냈다.


이런 일 말고도 나도 모르게 아빠에게 준 상처가 많았을 거다. 갑자기 내 곁을 떠나 내게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은 아빠가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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