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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쑥쑥 크는 딸을 보며

딸이 태어난 후, 친정 부모의 빈자리를 너무 많이 느꼈다. 내 딸에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정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고,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사랑받으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 손녀 하부지


딸과 처음으로 아빠에게 갔던 아빠 기일에는, 딸이 내게 안겨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두 번째로 갔던 기일에는 아빠 사진을 보더니 갸우뚱하기만 하길래, 하부지라며 인사하라고 했다. 하지만 딸은 "하부지 아니야."라며 인사하지 않았다. 순간 서운했지만, 이어진 말을 듣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하부지 아니고 아찌야."


두 돌 아가의 눈에 아빠의 모습은, 하부지라기엔 너무 젊게 보였나 보다. 아빠가 환갑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아가의 눈엔 그럴 만도 하다. 한참 갸우뚱하더니, 마지막에 한 마디.

"하부지, 또 오꼬요."


딸과 함께 세 번째로 갈 일이 다가올 즈음, 시부모님 댁에 다녀온 딸이 "엄마(의) 아빠는 어디 살아?"라고 물었다. 내가 하늘나라에 산다고 대답했더니, 내가 기운 없어 보이면 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아빠 보고 싶어서 그래?
○○이가 헬리콥터 타고 만나게 해 줄게요."


네 번째인 이번 기일에는 하부지 더울 거 같다며, 아빠 사진에 선풍기를 틀어줬다. 손녀가 틀어준 선풍기 바람에 장마철 덥고 습한 기운이 좀 걷혔을까.


딸이 자라면서 이쁜 짓을 많이 할 때마다, 딸이 시부모님께 이쁨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딸과 남편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가 해줬던 어린 시절  모습이 딸을 통해 보일 때마다, 아빠 생각이 더 많이 다.


누구보다 손녀를 예뻐했을 아빠. 얼마나 예뻐했을눈에 선하다. 그래서 아빠가 너무 그립고 너무 보고 싶다. 그곳에서 아빠 손녀 잘 지켜봐 주시길. 아빠 손녀 곁에서 건강하게 있을 수 있게, 우리 부부도 지켜봐 주시길.


그나저나 아빠한테 가는 길이 많이 편해졌. 진로 소주, 믹 커피, 따뜻한 물, 라일락 담배, 간단한 안주거리 사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터벅터벅 걸어가던 길을,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타서 편하게 가니까. 그래도 오랜 시간 들여 가는 길에 아빠 생각을 더 할 수 있긴 했. 같이 갔던 고마운 친구들 생각도 나네.


아, 맞다. 아빠 있는 곳 주변에 군부대가 있는데, 남편이 군생활을 그곳에서 했단다. 아빠한테 갈 때 훈련받던 군인들을 가끔 봤었는데, 그 안에 남편이 있었을지도 모르겠. 인연이란 건 정말 신기한 듯.



| 딸과 남편


나는 딸을 남편에게 많이 맡기는 편이다. 아빠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딸과 남편이 친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남편과 딸이 손을 잡고 걷거나, 딸이 남편에게 안겨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나도 아빠랑 저랬지.', '아빠도 나를 많이 안아줬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딸하고 오래오래 살고 싶으면, 야식 먹지 마."


딸과 남편의 모습에서 나와 아빠의 모습을 본다. 앞으로도 둘의 모습을 보면서 아빠를 추억하고 싶다. 그러니 우리 가족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제발.


세돌 즈음, 딸이 내게 "엄마는 뭐야?"라고 물었.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이 엄마지."라고 했더니 아니라면서 자기 이름을 여러 번 말하더. 이름이 궁금한 건가 해서 말해주니까 엄청 행복하게 웃었다. 그날 남편이랑 말다툼했는데 이름을 연호하면서 내 옆에 꼭 붙어 있던 딸. 내 편을 해주려고 했나 보다. 딸과 남편이 친하길 바라면서도 내 편 들어주는 딸이 너무나 고맙고 좋았다.


그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편을 만들 생각도 안 했고, 그 부재에 서운해하지도 않았. 하지만 살아가면서 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딸의 응원이 게 큰 힘이 되더라. 그래서 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편이 되기로 다시 한번 다짐다. 남편이 밉더라도 딸까지 미워하진 않을 거다.



| 딸과 나

 

아가가 딸이란 것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내겐 너무 큰 행복을 주는 존재이지만 나중에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란 것을 꼭 인지시켜주고 싶다.  이미 딸은 유일하고 든든한 내 편이니까.


어느 날, 딸과 눈을 마주 보면서 딸 눈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있는데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눈에 ○○이가 보여. ○○ 눈에도 엄마가 보여?"
"응. 보여."
"정말? ○○이는 행복해."


계속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싶다. 내 욕심이지만, 딸이 나를 미화하면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아빠를 생각할 때 좋은 기억만 나는 것처럼.


예전 사무실에서 넝쿨 같은 걸 키웠는데, 한 동료 샘이 길을 만들어줬다. 그리로 타고 가면 좋겠다고. 일부 가지는 그쪽으로 가고 일부 가지는 다른 쪽으로 갔다. 그런데 다른 쪽으로 간 가지의 잎이 더 풍성했다. 내가 제시하는 길이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조언은 하되, 딸이 선택한 길을 응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누구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딸과는 정말  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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