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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행사들

졸업식,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 등

살다 보면, 크고 작은 행사가 참 많다.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 사람의 보는 눈을 생각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가장 어려운 말은, "남들만큼", "평범하게"라는 거.



| 대학 졸업식


대학을 졸업했을 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아빠랑 거하게 한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선후배 동기들의 권유로 참여했다. 다행히 생각지도 못한 친척들과 친구들의 방문에 외롭지 않게 보냈다. 정말 고마웠다.


졸업식 이후 어느 추운 날, 아빠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많이 울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이 내렸는데 우산을 가져가지 않아 젖은 상태에서, 빨리 달리는 자동차에 흙탕물이 튀어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아빠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날이지만, 너무나 초라하고 초췌한 몰골로 자취방에 돌아와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 결혼식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독신주의자나 비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결혼은 당사자만의 의견으로 성사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재 남편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를 받고 많은 고민 끝에 여기까지 왔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무튼, 결혼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결혼식이었다. 지인의 결혼식 가면, 친정 부모에 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나 부부가 친정 부모에게 인사할 때 슬펐다. 아니, 슬프다기보다는 부러웠다. 나는 그러지 못하니까. 결혼식을 한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결혼식에 가면 그런 느낌이 드는데, 준비할 때는 오죽했을까.


결혼 준비하면서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가끔씩 내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함께 걷는 연습을 하셨다. 입으로 "딴따따딴~"이라고 흥얼거리면서. 내가 원피스를 입으면 언제나 아빠는 그 연습을 시작했다. 그게 귀찮아서 치마를 입지 않겠다고 했을 정도다. 결국 아빠는 그 연습을 실행하지는 못했고, 나는 그 길을 남편과 함께 걸어갔다.


혼식 당일. 신부대기실로 아빠 사촌들이 들어오시는데, 어쩜 다들 그리 아빠랑 닮았는지, 눈물 참느라 힘들었다. 아빠랑 닮은 분들이 나를 보며, 아빠랑 닮았다고 이야기하시는 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결혼식 중간부터는 못 참고 울었다.


누군가는 결혼 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결혼식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러나 각자의 이유로, 우리 부부에겐 결혼식이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 딸의 백일과 돌 기념 식사


내가 잘 참여하지 않는, 거의 가지 않은 행사는 돌잔치다. 우리 아가의 돌잔치도 가까운 친척과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행사 진행자가 돈돈 거리는 게 싫고 무엇보다 아가와 양가 부모가 함께 사진 찍는 그 장면이 싫다. 양가 부모가 안 계시거나 한 분만 계신다면 너무 실례되는 장면이다. 부모가 모두 있는 가족이 당연한 가족 구성인 듯 인식시키는 그 장면이 너무 불편하다.



| 지인 부모의 환갑/칠순 잔치


가끔  지인 부모의 환갑/칠순 식사(요즘은 잔치보다는 식사를 한다.) 소식이 들린다. 아빠는 환갑 이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해드리지 못해 아쉽다. 시부모님 환갑 식사를 하면서도 표현은 안 해도 내심 아쉬웠고, 아빠와 비슷한 연배인 어른의 칠순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도 마음이 참 그랬다.



| 앞으로 많아질 행사들


아이가 커 갈수록 행사가 더 많아질 거다. 각 학교급에 진학할 때마다 입학식과 졸업식이 있을 테고, 지인들의 각종 행사 때마다 아빠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지겠지. 아이에게 그런 내 모습이 들킬까 봐 두렵다. 아이가 마음 쓰게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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