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상자 Nov 01. 2020

아빠와 다시 만나면

학자금 대출을 거의 갚을 무렵, 업무 외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봤다. 하고 싶었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할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 뭔지 말이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대부분 예술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었다. 거창한 음악을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소소하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지인 중에 작곡 전공자가 있었는데, 그분은 요즘 사람들이 작곡을 쉽게 생각한다며 불쾌해한 적이 많았다. 전공자로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전공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평소 좋아하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멤버이자 작곡가인 민홍이, 요조에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노래는 꼭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을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거다.”


내가 원했던 말이었다. 그의 말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취미 작곡 수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수업이 있었고, 커리큘럼을 보고 내가 할 수 있을지 여부를 확인해서 등록했다. 처음부터 겁먹기 싫어서 전문 용어(화성학 등)가 들어간 수업은 제외했고, 수강료도 고려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한 곡을 만들고 녹음도 했다. 수강생끼리 모여 모임비를 지원받아 노래를 모아 CD를 제작하기도 했다. 어딘가에 공유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지인에게 나눴다. 버리거나 어딘가에 쳐 박아두지 않을 것 같다는 사람들에게만 주긴 했는데, 모르지. ㅎㅎㅎ


뭔가 시작할만할 때, 아이가 생기면서 취미도 단절되었다. 임신, 출산, 육아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온전히 내게 의존하는 아이 중심 생활이 되면서,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금 일찍 시작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래저래 아쉽다. 


아무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만든 노래는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내용이었다. 언젠가 아빠와 만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그날을 기다리며, 내 딸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잘 살아가고 싶다.    



이전 14화 쑥쑥 크는 딸을 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