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출근(아이는 어린이집 하원, 나는 퇴근) 후, 생선 구이를 먹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밥집에 갔다. 자리를 잡고 주문하는 동안, 가게를 둘러보는 아이. 그러다 반가워하면서 외친다.
엄마!! 저기 뽀로로가 있어요!
아이가 가리킨 곳을 보니, 작은 뽀로로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아서 아이들도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공룡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그러네. 우리 집에 뽀로로 많지?"
혹시 가게 물품인데 달라고 할까 봐 미리 철벽 쳤다. 그런데 아이의 다음 말에 빵 터지고 말았다.
저 뽀로로는 없잖아요.
아, 그렇구나. 많고 많은 뽀로로 중에 저 뽀로로는 없구나. 모두 다른 뽀로로구나.
집에 와서 모든 뽀로로를 모아 놓더니, 다른 점을 이야기한다. 얘는 이렇고, 쟤는 저렇고.. 얘는 보드랍고, 쟤는 딱딱하고.. 얘는 움직이고 쟤는 앉아 있고.. 얘는 작고, 쟤는 크고.. 얘는 자동차를 타고 있고, 쟤는 북 치고 있고..
그래. 똑같이 생긴 뽀로로라도 역할에 따라 특징이 다른데, 하물며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겠어. 남들이 하니까, 튀지 않게, 남들 만큼이라는 말들로 획일적인 틀에 갇힐 필요가 없다. 남들과 큰 차이가 있을 필요도 없다. 다만,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다른 역할을 맡게 되면 또 그것에 충실하면서 살면 되는 것.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면 되는 것.
조금씩 단어를 말하던 두돌 무렵 때는 자신과 크롱과 동일시하더니, 공구 놀이에 빠져서 에디를 좋아하다가, 아는 것도 많아지고 다른 캐릭터에 관심도 생긴 아이. 하지만 잊을만하면 뽀로로를 찾는다. 새해에 다섯 살(만 3세)이 됐는데, 뽀로로 사랑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