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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Jan 15. 2021

든든한 내 편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 편이다. 밥보다 잠이 더 좋고, 시간 쪼개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시절의 습관이 몸에 익숙해졌는지, 아침을 먹으면 하루 종일 더부룩해서 일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전 오후 강의가 연달아 있는데 점심까지 먹지 않아서 유난히 배고팠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하원 하면서 딸에게 말했다.


"엄마 배고파서 혼났어."


서 집에 가서 밥 먹자고 이어서 말하려 했는데, 손 잡고 신나게 걷던 딸이 멈추더니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한테 혼났어? 내가 혼내줄게요!



피곤이 사르르 녹았다. 배고픔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혼났다는 말의 중의적 의미를 모르는 순수한 아이의 말이 너무나 큰 위로가 됐다. 정말 든든한 딸. 아들만 든든한 게 아니야. 나도 네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언제나 네 편이 될게.


그러나 감동도 잠시, 놀이터에서 놀아야겠다는 딸. 배고프다는 말은 못 들었나 보다. 결국,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한 시간 놀고 집에 들어와 씻었다. 오후 7시에 첫 식사라니. 그래도 좋다. 너와 함께여서.


잠들기 전,


나쁜 사람한테 혼나서 어디가 아야 해?



라는 아이. 엄마를 달래주려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고마웠다. 배를 가리키니 쓰담쓰담하고 '호~'해주는 딸. 배고프다는 말이 중요했던 거라 "배고파서 죽.."까지 말하다 멈췄다. 혹시나 또 뒷말(죽는 줄 알았어.)만 듣고 하늘나라 가지 말라고 울먹일까 봐.


아빠 기일 즈음, "엄마(의)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어. 그래서 보고 싶은데 못 만나."라고 얘기했다가 울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죽는다는 의미를 모르는지 알았는데 다 알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엄마(의) 아빠 보고 싶어?"라고 묻기도 한다.


아무튼 딸 덕에 말도 예쁘게 쓰게 되는 것 같다. 그 작은 마음을 다치게 할까 싶어서 조심조심. 그래도 가끔 떼쟁이가 될 때 울컥하기도 하지만, 조심조심해야지. 아이가 쓰는 말의 대부분은 내게 배운 것이니까. 거친 말이나 욕을 하지 않으며 살아온 나를 칭찬해. 토닥토닥.


"이렇게 예쁜 딸이 어디서 왔을까?"라고 물으면 "엄마 배!!"라고 말하는 아이. 내 딸이어서, 부족한 내게 와줘서 정말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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