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역할 놀이'다. 여러 인형을 가져다 두고, 놀이 시작 전에 꼭 역할(대사까지)을 지정해준다. 어느 주말, '엄마아빠 놀이'를 하자는 아이. 일단, 자기는 좋아하는 '엄마'를 하겠단다.
엄마는 '아가'해. 나 좋아하니까. 자, 엄마가 좋아하는 고양이.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인형을 주면서 아가를 하라고 하길래, 아빠는 누구 하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아빠를 좋아하니까 '아빠'하면 된다고 한다. 자기와 엄마는 서로 좋아하는데, 아빠는 아빠를 제일 좋아한다나 뭐라나. 아빠 반성 필요. ㅎㅎㅎ
한참 놀다 보면, "싫어."라고 말하며 고집부릴 때가 있는데, 미운 말하지 말자고 했더니, 인형 하나를 들면서 "싫다고 한 게 아니라, 얘 이름이야."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싫어'야?"라고 물었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지, 갑자기 '제니퍼'라는 외국어 이름으로 부른다. 뭔가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큰 잘못이 아니면 이렇게 넘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마무리하려고, 외국 이름 말고 한국 이름으로 지어달라고 했다.
한국아.
한국 이름으로 지어달라고 했더니, '한국'이라고 지어버렸다. 생각하지 못한 반응에 또 그렇게 웃고 만다. 그런데 아이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내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라고 묻는다. 아이가 이름 지어준 인형이 많긴 하지만, 인형 이름을 연달아 짓다 보니 자기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궁금했나 보다.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글자를 선택했고 아빠랑 이야기 나눠서 결정한 이름이라고 하니까, 활짝 웃는 아이.
이쁜 이름이니까 미운 말하지 않을 거야.
엄마와 아빠가 지어준 이름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도 고마웠지만, 예쁜 이름을 가진 어린이니까 미운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너무 기특했다. 미운 말하지 말자고 할 때 말을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아도 아이는 항상 부모 말을 귀담아듣고 있나 보다.
아이와 이름에 대해 말하다 보니, 문득, 아이의 이름을 지었을 때가 생각났다. 아이의 이름은 작명소에서 짓는 것도, 집안 어른이 짓는 것도, 돌림자를 따라 짓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부모가 고민해서 짓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양보해도 아이 이름만은 그렇게 짓고 싶었다.
나는 예전부터 외자 이름과 중성적인 이름을 동경했다. 아직 아이의 성별을 모를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 두 가지를 남편 성에 한 자씩 붙여 보았는데, 외자라서 특이하기도 하고 의미도 좋았지만, 친구들에게 놀림받을 수 있는 단어가 되어버려서 많이 고민했다. 한글 이름도 고려하다가 남편 성과 내 성 사이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자를 넣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부모 성이 모두 들어간 것도 좋지만, 아빠와 엄마가 항상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겠다는 의미로.
내 의견에 남편도 동의해서 그렇게 결정했다. 그리고 어린이집 대기 신청을 하기 위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출산 전에 아이 이름(한글과 한자)을 적어서 남편에게 전달해뒀다. 틀린 한자로 등록할까 봐 조마조마(결혼 결정 후 우리 집에 인사하러 갈 때, 자기 이름 한자로 쓰는 연습을 시킬 정도로 남편은 한자를 잘 모름 ㅎㅎㅎ)했다.
다만, 시부모님이 서운해하시기도 했다. 지은 이름을 미리 말씀드렸는데도 출산 후에 아가 보러 병원에 오셨을 때, 이런 이름 어떠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으니까. 죄송하지만 부부가 고민해서 결정한 이름으로 하겠다고 하니, 양해해주셨다. 지금은 오히려, 이름이 너무 입에 잘 붙고 아이와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라며 좋아해 주신다.
아무튼, 엄마와 아빠는 너무 마음에 드는 이름인데, 나중에 아이가 커서도 자기 이름을 좋아해 주면, 정말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