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터 출산까지 (2016.09.13. 작성)
명절을 앞두고 남편 본가의 선산에 다녀왔다. 유난히 피곤했던 그 날. 생리가 늦는 것 같아서 한번 검사해봤다. 검사지에 선명한 두 줄. 한동안 멍하니 검사지를 바라보다가 남편에게 갔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남편은 무심하게 날 쳐다봤다. 내가 내민 검사 결과를 보더니, 눈이 엄청 커졌다. 내 남편의 눈은 작은 편인데, 앞으로도 그렇게 큰 눈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검사지 한번, 나 한번 쳐다보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눈이 커진 만큼 입도 커졌다.
그렇게 좋아할지는 몰랐는데, 표현은 안 해도 무척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극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게 아쉽긴 하지만, 그 당시의 내 심정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기 때문에, 아마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알릴 것 같다.
남편에게는 검사지로 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니라고 말해놓고, 다음 날 보건소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바로 나오더라. 임신이라고 했다. 가방에 걸 수 있는 임산부 배려 엠블럼과 엽산을 받고, 이것저것 안내책자도 받았다. 뭔가 할 일이 많아진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어머님"이라는 호칭이었다. 그냥 내 이름 불러주면 안 되는 걸까. 결혼 과정에서 "신부님"이라는 호칭도 참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렇게 내 이름은 점점 사라지는 걸까.
보건소에서 임신이라는 확답을 들은 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것.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아닌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고, 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며, 벌써 어떤 아가 일지 궁금하기도 한, 복합하고 미묘한 감정이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 무엇보다 이 넓은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을 텐데, 부족한 것이 많은 나에게 와준 아가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사람 아기도 동물처럼 태어나자마자 걸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 좋은 엄마까지는 아니라도, 괜찮은 엄마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