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고양이상자 Aug 31. 2019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딸의 발에 차여 깬 새벽.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의 찬 바람 때문인지, 괜히 감성 충만해서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아가가 구내염에 걸렸다. 어린이집에서 한창 수족구가 유행할 때라 걱정했지만 잘 넘겼다 싶었는데 막판에 옮고 말았다. 아가는 이틀 정도만에 완치되었지만 간호하다가 내가 옮았다. 40도 가까이 열 오르락내리락했었고 아가에게 다시 옮길까 봐 아가와 떨어져 있었다. 처음이었다. 아가와 따로 자고 맘껏 안지도 못한 것은. 아직 어려서 설명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고 미안했다.

그때 기억이 나는지, 내가 조금만 아파 보여도, 아니, 졸려서 하품만 해도, 냉큼 달려와 나를 눕히는 딸. 애교 따위 부리지 않는 시크한 아가의 단호함에 뭐라 말할 겨를도 없이 나는 눕고 만다. 내가 간호해 줬던 모습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게 너무 귀엽고 고맙다. (하원 후에 네가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조금만 줄여줘도 엄마의 피로도는 확 줄어들 거야.)

빨래통에서 수건 꺼내와서 머리에 얹어 주고 몸 닦아 줌

 - 새 수건으로 해주면 좋겠...
나무 퍼즐 가져다가 "뜨거워?"라며 호 불어서 먹여줌

 - 안 뜨겁다고 하면 서운해한다. 호 해야 하니까. 답정너.
"매워?"라며 물(이라고 하는 거) 가져다 줌

 - 물을 가져다줘야 하기 때문에 맵다는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묻는다. 처음에 내가 "목말라?"를 못 알아들었더니,  "매워?"만 한다.
볼펜으로 주사 놓음

 - 장난감 주사기가 있는데 왜때문에...

인형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함

 - 네가 제일 시끄...

이제 괜찮다며 일어나도 되냐고 하면 "음~"이라며 잠시 생각해보더니, "안돼요. 누워요."라는 단호한 쪼꼬미. 나처럼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로 클까 봐 걱정도 된다.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되니까 너 답게 살기를.

종이 들고(장난감 전화기도 있는데 왜때문에)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 아야 해요. 다쳤어요. 도와줘요."라는 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쨘하기도 하다. 그러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또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국가자격시험을 봤는데 필기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남편은 그렇게 아픈데 다음에 보면 안 되냐고 말렸지만, 그동안 시간 쪼개 공부한 것도 아깝고 얼마 안 되는 전형료도 아까워서 봤다. 막판에 정리를 못해서 기대 안 해서인지 더 기쁘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셀프 칭찬해야지. 토닥토닥.


빡센 실기가 남았는데 올해까지 마무리할 계획이 있어서 내년에 볼까, 그냥 확 봐버릴까 고민 중이다. 여러 가지 하느라 필기 때도 힘들었는데 실기는 필기보다 더 부담되니 말이다. 쌕쌕 자고 있는 아가 보면서 고민 좀 하다가 자야겠다. 둘 다 또 아프진 않겠지.


이제 좀 잠이 몰려온다. 아가가 꿈나라에서 부르고 있나 보다. 어서 갈게. 꿈나라에서 만나.

이전 01화 퇴직, 새로운 시작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귀여우니까 견딘다_03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