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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9. 2021

일제가 'Corea'를  'Korea'로 수정했을까?

'역사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고지도 모으는 김태진 대표


“독도를 표시한 고지도를 발견했다” “동해로 표기한 고지도를 발굴했다.” 고지도 수집가 김태진 티메카 대표는 이런 고지도 관련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수집하거나 발견한 고지도를 관계 기관에 소개해서 뉴스가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사는 길고 고지도는 많다.


원래 한국과 관련한 서양 고서를 수집하고 유통시키던 그가 고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국내 고지도 보유량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부터다. “우리는 일본과 영토 분쟁 중이고 중국과는 역사 전쟁 중이다. 이런 논쟁에서 고지도 확보는 논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고지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서양 고서를 수집하던 노하우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모은 고지도 자료를 공개해 연구자들이 실제 지도를 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스스로도 공부했다. 의미 있는 고지도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발견된 고지도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고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뒤늦게 명지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서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고지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언어학적·역사학적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중세와 근대인의 철학도 꿰뚫어야 한다. 그래야 지도가 제대로 보인다. 고지도를 수집하면서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배워서 남 주는 게 아니라 나 주는 일이었다.”


김태진 티메카 대표


고지도 전문가인 김 대표가 가장 답답하게 느낄 때가 'Corea'와 'Korea' 국호 영문 표기를 놓고 다툴 때다. 아직도 'Corea'였던 영문 국호를 일본이 'Korea'로 바꿨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광복절이나 삼일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김태진씨는 이런 논쟁이 소모적이라며 이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 주었다. 


" 'Korea' 영문 국호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썼던 국호다. 대한제국의 영문 국호, <독립신문>의 영문 제호, 3·1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서>의 영문 제목 모두 'Korea'였다. 당시 일본은 'Korea'가 아니라 ‘Chosen’과 ‘Tyosen’을 사용했다."




'FROZA COREA(힘내라 코리아)’. 월드컵 기간에 경기장과 광장에 차고 넘친 붉은 물결 위로 새겨진 한국의 영문 국호는 Korea(코리아)가 아니라 Corea(꼬레아)였다. 경기를 관람하는 김대중 대통령 목에 걸린 붉은 머플러 위에 새겨진 글씨에서도, 경기장에서 시민과 만났던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얼굴에 그려진 페이스 페인팅에서도, 한국팀의 완승을 기원하는 붉은악마의 카드섹션에서도 한국의 영문 국호는 Korea가 아닌 Corea였다.

월드컵을 통해 ‘거리의 국호’로 사람들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Corea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북한 때문이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국호의 영문 표기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영문 국호를 Korea에서 Corea로 바꾸는 문제를 의논하는 남북·해외 학자들의 공동토론회를 갖자고 공개 제의하기도 했다. 


북한이 국호의 영문 표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일본의 국호 수정설이다. 원래 한국의 국호는 Corea였는데, 일본이 식민지 조선이 국제무대에서 (알파벳 순서로) 일본보다 뒤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Korea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주장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속설이다. 그런데 과연 일본이 정말 한국의 영문 국호를 바꾸었을까?


원로 해양학자인 한상복 박사는 이런 주장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도 Korea라는 명칭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이 처음 조선을 Corea라고 유럽에 소개한 이후 불어(Coree)권과 스페인어(Corea)권 등 라틴계 국가에서는 Corea가 일반적으로 쓰였고, 독어권과 영어권 국가에서는 Korea가 주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한씨의 이런 주장에 미국 남가주대학(USC) 동아시아도서관의 조이스 김 학예연구사 역시 동의한다. 동아시아 지도자료실의 고지도(17~19세기)에 나와 있는 한국의 영문 표기 역시 Korea와 Corea가 함께 쓰였기 때문이다. Korea가 일제 강점기 이전에도 많이 쓰였다는 것은 엘로드 사가 발행한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출판된 영어 문헌 색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Korea가 일제 강점기 이전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국호 개정주의자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당시 병기되었던 두 표기 중에 일제가 Korea만 취함으로써 Corea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지도 전문가인 국립중앙박물관 오상학 학예연구사는 “일제는 한일합병 이후 대한제국을 이조(李朝)로 격하했다. 이에 따라 일제는 조선의 영문 표기를 일본어 발음에 맞추어 ‘Chosen’과 ‘Tyosen’으로 썼다”라며 이를 반박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의 정확한 영문 표기를 보면 ‘Government-General of Tyosen’이었다. 오씨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Korea가 일반화한 것에 대해 단순히 영어가 세계어가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국호 바꾸기 운동이 대부분 반일 감정에 기대어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한상복 박사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는 “대한제국의 영문 국호, <독립신문>의 영문 제호, 3·1운동 때 발표된 <독립선언서>의 영문 제목, 하와이에서 발행된 독립 국채의 영문 명칭, 미주 독립운동 단체의 영문 국호 모두 Korea를 사용했다. Korea를 매도하는 것은 이들의 정신까지 매도하는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국호 논쟁이 반일 감정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는 했지만 Corea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박사도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Korea보다 Corea가 원조 표기이고 K를 잘 쓰지 않는 라틴계 언어 국가에 친숙할 수 있다. Corea는 또한 상해 임시정부가 썼던 국호이기도 하므로 살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성래 교수(외국어대·사학)도 “Korea보다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Corea를 사용하는 것은 찬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호 논쟁은 월드컵 이후 생성된 민족적 에너지의 성격을 ‘닫힌 민족주의’와 ‘열린 민족주의’로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호 논쟁도 반일 감정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통일연대 등 통일운동 단체들은 지난해 남북축구대회와 아시안게임 때 ‘One Corea!’ 구호를 외치며 Corea를 통일 이후의 단일 국호로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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