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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Nov 13. 2021

여행감독이 제안하는 늦가을 부여 여행법

한적하게 백제의 시간을 걸어보자


#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


예전 일본의 표현 중에 ‘다라나이(くだらない, 백제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 혹은  볼일 없다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그만큼 백제에서 만든 물건이 좋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였다고 한다. 고대 일본인들은 백제 장인이 한땀 한땀 지어 만든 물건들을 최고로 쳤다. 1500  현해탄을 넘은 한류가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고대 일본인들이 반한 백제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부여 여행은 시시하지 않았던, 별 볼일 있었던 그 시절 백제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신라의 수도 경주와는 느낌이 다르다. 부소산성과 낙화암, 정림사지와 능산리고분을 걸으면 마치 역사교과서 위를 걷는 기분이다. 해가 기울 때 이런 곳을 걸으면 수고하고 짐 진 우리를 위해 의자왕이 “너희들이 나만큼 망해봤을까?”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부여 여행은 무작정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여행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슬쩍 던져주는 여행이다.  


젊은 여행자들에게도 부여는 떠오르는 여행지다. 백제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던 백마강(금강)은 이제 카누와 SUP(보드 위에서 서서 노를 젓는 레포츠)을 즐기는 레포츠 명소가 되었다. 제주에서 잠깐 했다가 사라진 열기구 체험도 오직 부여에서만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궁남지의 버드나무와 성흥산성 사랑나무 아래에서 인생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부여는 젊은 여행지다.  


삼국시대에 백제가 멸망하기 전 거북이 등껍질에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는 글귀가 나왔다는데, 이를 여행지로 비유하자면 ‘경주는 보름달과 같고 부여는 초승달과 같다’는 말로 빗대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황리단길로 경주가 다시 청춘 여행지로 부상했는데 그 맞수를 꼽으라면 단연 부여다. 1500년 전 백제의 시간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 부여 여행의 시작점, 규암마을  


부여 읍내의 백마강 건너편에 있는 규암마을은 옛 백제의 무역항이었다. 백제가 멸망하고도 서해안의 물산이 금강을 통해 들어올 때 규암마을 나루터가 집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풍요로웠다. 근대까지 규암마을의 풍요는 이어져서 마을길을 걸으면 화려한 과거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부여의 구드래 벌판에서 나온 풍부한 농산물을 실어 날랐던 것도 규암마을 나루터였다. 그래서 오일장이 열렸고 그것으로 부족해 삼일장이 섰을 정도다. 특히 ‘쌀전’과 ‘모시전’이 규암장의 중심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규암마을의 풍요는 이어졌는데 마을에 남은 적산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까지 부여의 풍요는 이어졌다. 대표적인 수학여행지였던 부여는 택시회사가 수영장을 운영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았다. 규암마을과 읍내를 잇는 바지선에 버스를 실어 나를 만큼 유동인구가 많았다. 전성기에는 극장과 백화점까지 있었던 규암마을에 요정만 64곳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온길은 이 규암마을을 관통해서 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인데 1500년 전 백제의 화려함이 공예로 부활하고 있다.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통해 청년 공예인들이 규암마을로 들어왔는데 그들이 자온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청년 공예인들이 쇠락한 골목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공방을 열고 있다. 최근 마을 입구에 아트큐브가 들어섰는데 창작센터, 레지던시도 곧 들어설 예정이다. 자온길은 황리단길에 버금가는 젊은 여행자들의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백제의 시간을 걷다, 부소산성 - 정림사지 - 궁남지  


부여에서 백제의 시간을 느끼는 일정으로는 부소산성(낙화암) 정림사지 궁남지를 순서대로 걷는 방식을 추천한다. 백제 멸망의 장소부터 백제의 화려한 순간까지 사비의 시간을 거꾸로 걸을 수 있다. 장소 간 거리도 1km 이내로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코스다. 박물관에 박제된 백제가 아니라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견뎌낸 진짜 백제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부소산성은 낙화암을 중간 기착지로 두고 내키는 대로 걸으면 된다. 부소산은 높이가 100m도 되지 않은 낮은 산이다 산성도 그리 크지 않아 방향감각이 둔한 사람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그리 가파르지 않고 조금만 오르면 평야와 강이 시야에 들어와 시원한 눈맛을 즐길 수 있다. 백제의 시간을 걷다가 낙화암에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정림사지는 백제의 정한을 위한 화룡점정이다. 모든 게 사라진 절터에서 1500년의 시간을 버텨낸 5층 석탑을 바라보면 그저 먹먹해진다. 백제를 멸망할 때 사비성이 7일 동안 불타올랐다고 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홀로 남은 5층 석탑의 탑신에 "大唐平百濟國(대당평백제국)"라고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고 새겨놓았다. 탑은 그 치욕의 역사를 품고 세월을 버텼다. 지금이야 백제의 고도로 부여가 조명받고 있지만 관련 시설이 없을 때는 이 석탑이 유일하게 왕궁의 영광을 증거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인이 적지만 부여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다. 부소산성이나 정림사지에서 만난 일본인 중에는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인들은 부여에서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는데, 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옛 부여박물관이나 김대중정부 시절 복각한 백제궁궐이 왜색 시비가 일었던 부분도 여기서 이해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이 차용한 백제의 문화예술이 많기 때문에 백제를 복원하면 역으로 일본을 닮아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부여 여행은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여행이다. 그 백제 여행의 마지막 쉼표로 추천하는 곳이 바로 궁남지다. 연꽃 공원인 궁남지는 백제 산책의 마지막 코스다. 연꽃으로 유명하지만 연꽃만 보러 가는 곳은 아니다. 도심 외곽에 넓게 조성된 공원이라 연꽃이 안 피는 계절이라도 버드나무길을 걸으면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공원이라 어디로든 들어갈 수 있으니 혼잡한 메인 주차장을 피해서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걸으면 좋다. 궁남지의 연꽃 한송이에서 백제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 부여에서 석양 감상하기 좋은 곳  


백제를 상상만 하는 것으로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백제문화단지에 가면 된다. 백제의 궁궐과 사찰을 재현한 곳이라 백제의 화려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능사 5층 목탑은 백제시대에 불교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문화재가 아니라 재현한 곳이니 관람 포인트를 감상이 아니라 나만의 백제를 만끽하는 것이 적당하다. 넓은 궁궐 마당에서 날렵한 치마선을 살려 하늘을 넣어 찍으면 제법 좋은 사진이 나온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토일 저녁에 야간 개장을 하는데 석양 사진을 찍고 둘러보면 좋다.  


부여의 석양은 어디서든 좋다. 백제문화단지의 날렵한 처마선 옆으로 지는 해도 좋고 정림사지 5층 석탑 뒤로 지는 석양도 좋다. 가장 권하고 싶은 석양 명소는 백마강이다. 백마강 어디서든 좋지만 지도를 보고 강줄기가 정서 방향으로 뻗어가는 곳에서 보는 석양은 서해의 석양 명소 못지않다. 신경림 시인의 표현을 조금 빌자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싶은’ 풍경이다.  


부여 외곽에서는 연인들의 사진 명소로 꼽히는 사랑나무가 있는 성흥산성(가림성)과 능산리 고분군을 여행지로 꼽을 수 있다. 성흥산성은 사비의 관문을 지키는 산성으로 수도방위사령부 역할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연인들의 사랑을 지켜주고 있다. 능산리 고분군은 경주의 서악동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하릴없이 멍때리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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