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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Dec 30. 2020

캄차카 기행 1편, 대자연에 압도당하다

가공되지 않은 원시 대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캄차츠키 시내에서 바라본 설산 풍경



1대 100 아니 1대 1000의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X축과 Y축을 그려보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3사분면 서남부의 중국 혹은 동남아로 여행을 간다. 그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은 4사분면, 동남부의 일본이다. 2사분면, 서북부의 몽골과 중국 동북 지방도 요즘 제법 간다. 하지만 1사분면, 동북부의 러시아는? 아마 거의 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3사분면의 동남아로 가는 사람과 1사분면의 러시아로 가는 사람 비율을 비교해보면 1대 1000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1대 1000의 게임에서 1000이 아니라 1이 되기 위해 동북 방향으로 시야를 넓히면 러시아 불곰의 턱처럼 늘어진 거대한 반도를 보게 된다. 바로 캄차카 반도다. 이곳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원시 대자연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지인의 추천이었다. 그날 바로 항공권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동남아 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경유해야 하는 항공권이기는 하지만 가격도 동남아와 비슷했다.      


의문이 들었다. 동남아에 갈 시간과 돈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인데 왜 이 곳에 갈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것인지. 겨울에 동남아에 갈 생각을 한다면 여름에 캄차카 반도에 갈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실제로 일본인들은 여름에 더위를 피해 캄차카 반도 여행을 많이 한다). 왜 우리는 상상력의 컴퍼스를 여기까지 돌리지 않은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역시 북한이 걸렸다. 북한은 우리에게 물리적 장벽이면서 또한 상상력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북한을 넘어서 가야 하는 곳으로 우리는 상상력을 확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캄차카 반도라는 원시의 비경을 간직한 최고의 여행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너무나 손쉽게 갈 수 있는 곳인데, 우리 상상력의 범위도 넓혀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으로 캄차카 대자연기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캄차카는 북방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기에 최적의 장소다. 탐험가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데 결정적 구실을 제공한 프랑스의 라페루즈, 쿡 선장이라 불린 영국의 제임스 쿡, 그리고 베링해라는 이름을 남긴 덴마크의 비투스 베링 등이 항해 도중 캄차카 반도를 방문했다. 캄차카 반도 안팎엔 이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이 많다. 이 탐험가의 이름 중 우리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이하 캄차츠키, 캄차카의 주도) 곳곳에는 탐험가들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그 동상과 함께 볼 수 있는 것은 전승 기념탑인데 아바차 만에 자리 잡은 캄차츠키 항은 크림전쟁 당시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격돌했던 곳으로 러시아의 군사 요충지 중 하나다. 지금도 극동함대의 군사항으로 쓰인다(캄차카 반도는 1991년에 외부에 공개되었다). 러시아 공군 비행장을 개조한 캄차츠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이 느낌은 시작된다. 멀리, 하지만 뚜렷이 보이는 설산 군봉을 바라보며 탐험가의 흥분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캄차카는 풍광이 매력적인 곳이다. 캄차카의 대자연은 인간을 압도한다. 우리가 대자연을 찾는 이유는 대자연에 압도당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광활한 대지, 웅장한 산,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며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을 받고 싶어서, 답답한 도시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우리는 그곳에 간다. 그런 우리를 위해 캄차카 반도는 최고의 도피처요 유배지다. 그곳은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를 한없이 작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어준다.     


 


캄차카에 가면 여행 첫날 헬기 투어를 할 가능성이 크다. 기상 상황에 따라 취소되기 일쑤여서 보통 헬기 투어는 투어 앞부분에 배치한다. 헬기 투어는 조종석이 세 칸인 러시아제 Mi-8 헬기를 이용한다. 헬기는 캄차카 반도의 산맥 위를 천천히 비행해서 내려간다. 맨 아래쪽에 있는 쿠릴 호수에 내려 불곰이 연어 잡는 것을 보고, 크수다치 화산의 칼데라를 감상하고, 호두트카 온천에서 간단한 온천욕을 한 다음 복귀한다. 대략 6~7시간이 걸린다.      

캄차카에서 헬기를 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길이 끊기는 느낌’을 경험해보기 위해서다. 캄차카 반도는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도로나 철도 등 육로로 외부와 연결되지 않은 곳이다. 캄차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헬기나 경비행기, 배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헬기를 타고 쿠릴 호수로 가는 동안 대자연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행성을 여행하는 우주 여행자의 느낌을 받게 된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고립감은 캄차카를 여행할 때 느끼는 중요한 감정이다. 캄차카 반도의 면적은 남한의 4배 반 정도인 46만㎢에 달하는데 인구는 약 32만 명에 불과하다. 환산해 보면 1㎢ 1명이 되지 않는데 한국의 인구밀도는 500명 정도다(서울은 약 17000명). 흥미로운 것은 인구 32만 명 중 한국인의 비중이 열 번째라는 점이다(약 1585명).     



헬기가 맨 먼저 들르는 곳은 캄차카 반도 최남단 쿠릴 호수 한쪽에 마련된 곰 관찰 캠프다. 쿠릴 호수는 면적이 27.1㎢에 최대 수심이 300m인 큰 호수다. 여름에 북태평양 연어의 20%가 오팔라 강을 거쳐 이곳으로 회귀하는데 주로 홍연어(sockeye salmon)를 볼 수 있다. 러시아 불곰이 연어를 잡는 발길질은 마치 고양이가 나비를 보고 장난치는 것처럼 경쾌하다. 장난치듯 툭툭 발길질을 하는데 걸려드는 연어도 있고 빠져나가는 연어도 있다. 걸려들면 여지없다. 거센 이빨로 숨통을 물어뜯는다.      


곰과 사람 사이에는 전류가 흐르는 철사가 있을 뿐이다. 총을 든 가드들이 서 있기는 했지만 살짝 긴장이 되었다. 캠프에서 휴식을 취할 때 덩치 큰 흑곰 한 마리가 우리가 탈 보트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원시 그대로’라는 표현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보트를 타고 호수의 반대쪽 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불곰과 흑곰이 연어 잡는 모습을 보았다.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배경으로 원시림 앞에서 곰이 연어를 잡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쿠릴 호수 다음으로 헬기가 향한 곳은 크수다치 화산의 칼데라인 클류치 호수다. 이곳 칼데라는 이중 칼데라다. 칼데라에서 화산이 폭발해 그 위에 다시 칼데라가 생겼다. 화산 안에 화산이 있고 칼데라 안에 칼데라가 있는 셈이다. 클류치 호수는 그중 낮은 곳에 있는 칼데라인데, 곳곳에 뜨거운 물이 나와서 온천 같았다. 실제로 일행 중 러시아인 중년 남성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호수 한쪽에서는 우리처럼 헬기를 타고 온 러시아 가족 여행객들이 불을 피워놓고 샤실리크(러시아식 꼬치구이)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넓은 클류치 호수를 이 가족과 독점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들도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빵과 훈제 연어를 주면서 불 가까이로 안내했다. 불과 음식이 그들을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헬기가 마지막에 들른 곳은 호두트카 노천 온천이었다. 자연 개천인데 뜨거운 물이 나와서 온천으로 이용되었다. 이곳 역시 육로로는 연결되지 않고 조그만 캠프가 조성되어 있었다. 통나무 오두막이 있어서 가져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온천욕을 즐겼다. 캄차카의 노천 온천은 일본의 노천 온천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꾸며진 게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온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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