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사랑의 유효기간을 3년이나 잡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영화에서는 3년이 짧다며 이에 대해 논쟁을 한다. 암튼 재미있는 영화다(여배우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자기중심적이면서도 타인과의 소통(사랑)에 밸런스를 맞추려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면 모임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그보다 짧게 본다. 나는 1년으로 잡는다. 한국인의 모임에서는, 한국 중년의 모임에서는 그렇다. 물론 모임은 얼마든지 그 이상 지속될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유효기간의 기준은 텐션이다. 모임의 텐션은 1년째가 정점이고 그 이후는 내리막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는 얘기는 그 후로는 사랑이 주는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모임도 마찬가지다. 1년이 지나면 효용보다 비용이 커진다.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한국 중년의 모임에서 1년이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마디로 인간사회의 축약판이다.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정적인 사건이 모임에서도 발생한다. 돈 빌려달라는 사람,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 성적 괴롭힘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고개를 내민다.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친밀감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한국 중년들의 모임에서는 친밀감만한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다. 잘못을 한 사람이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걸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끼리끼리 모이려는 속성도 전체 밸런스를 깬다. 예전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CEO를 하신 분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법대 경영대 동기회가 잘 되지만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그중 부장판사 지검장된 동기생과 대기업 임원 진출한 동기들이 따로 모이고 나중에는 일정 레벨 이상들만 과를 넘어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모이게 된다고.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친목이나 취미를 위한 모임이었다 할지라도 '영양가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런 심리로 끼리끼리 모임이 만들어지면 이에 초대받지 못한 멤버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끼리끼리 모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맥'이 아니라 '인연'을 가져가라고 주창해도 소용없다.
사랑하는 사람도 1년이 지나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임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호의로 무장한 것 같은 사람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단점을 지적하기 시작하고, 단점을 지적한 걸 들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모임의 균열도 시작된다.
어른의 여행클럽을 구상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유효기간을 두자는 것이었다. 여행친구가 좋은 이유는 여행 기간 동안만 여행에서 보여주는 모습만 보기 때문이다. 계속 보면 일상 친구랑 차이가 없다. 여행처럼 기한을 두는 것이 여행친구 모임에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어른의 여행클럽은 1년을 기한으로 두기로 했다. 그 뒤에는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모이면 된다. 그리고 남는 에너지는 새로운 모임에서 새로운 여행친구를 사귀는데 쓰면 된다. 모임을 유지하느라 불필요한 사이킥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잔치는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갱신되는 것이니까.
혈연 지연 학연으로 모인 집단이라면 다르겠지만 그런 연결 고리가 없는 모임이라면 1년 정도의 템포가 적당한 것 같다. 2년 정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은 자신과 코드가 맞는 4~5명의 소그룹을 만들어 낸 사람이 승자라는 것. 그렇게 간선도로에서 빠져나와 자신들만의 지선도로를 달리면 된다.
코로나 이후 본격적으로 여행클럽의 해외여행을 시작한지 3년차가 되었는데, 회고적으로 보니 같이 여행한 사람의 그룹이 갖는 친밀감이 ‘로우텐션’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사이, 좀 소원하지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사이.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무엇보다 모임을 위한 유지보수 비용이 들지 않아서 좋다. 자율적이다. 내가 국내에 있는 날이 적기 때문에 모임에 참석하기 힘든데, 나 없이도 알아서 잘 모인다. 다들 성인이니까. 서로 초대하고 초대하며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