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십 년 전이다. 여수엑스포 국가관 중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모로코가 탁월했다. 아프리카의 원색과 아랍의 문양과 유럽의 디자인이 환상 결합한, 지극한 미감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를 보여주었다.
십 년 남짓 지나 드디어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참가자가 충분히 모이지 않기도 했고, 겨우 인원을 채웠더니 마라케시 인근에 큰 지진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기로 했다.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모로코인을 여행으로 돕기 위해. 그들이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하니까.
스페인(남부)이 '유럽 속 아랍'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모로코는 '아랍 속 유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혹은 아프리카 유목민(베르베르족) 속의 아랍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유럽을 지배해 본 경험이 있는 아랍의 둥지이기도 한데, 그들이 구축한 문화의 이종 결합이 궁금하다.
숱한 유럽의 작가와 화가가 영감을 받고 간 곳이 또한 모로코다. 그들에게 영감을 준 것이 모로코의 무엇인지 궁금하다. 미리 그들의 작품을 두루 읽고 보지 못하고 온 게 아쉽다. 일단 총천연색 모로코에서는 사진부터 열심히 찍어보려고 한다.
모로코에는 무엇보다 이븐 바투타가 태어난 탕헤르가 있다. 그의 여행기는 세계 4대 여행서에 속하는데, 4명의 여행가 중 마일리지가 가장 많다(마르코폴로의 5배 정도). 또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의 관점에서 여행지를 보았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가져오지 않은 게 못내 아쉽다.
‘화이트 아프리카를 가다’는 크게 세 개의 씬으로 구성된다. 케냐-탄자니아씬(세렝게티 등 초원, 킬리만자로, 잔지바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한 남아프리카씬(나미비아 사막과 빅토리아폭포 포함)과 모로코다.
모두 백인에 의해 재해석된 아프리카고 그들을 위한 ‘여행 컨베이어벨트’가 깔린 곳이다. 일단은 그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언젠가 나만의 루트를 구축해 보기로 하고.
모로코기행 1일 차, 다소 실망했던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에서는 이슬람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기도문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향했던 첫 방문지 핫산 2세의 모스크가 바로 인근이다. 신의 사원은 물 위에 짓는다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바다 쪽을 간척해서 지은 모스크인데 참 잘 지은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로 들어가니 보통의 이슬람 사원과 달랐다. 성당 건축을 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히 보던 모스크보다 중앙과 좌우에 긴 회랑이 놓인 방식인 게 성당과 비슷했다. 모로코에 반했던 이유가 색감과 문양감의 조화였는데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모스크였다. 바다색과 하늘색을 받아내며 은은하게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무대, 험프리 보가트의 카페를 카사블랑카에 재현한 ‘릭스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행 첫끼라 여행감독의 웰컴 푸드라 푸짐하게 시푸드 플래터로 시켰는데 음식이 좋았다(와인은 너무 비쌌고). 릭스카페는 공간이 잘 설계되어서 음악 듣기에 좋았다. 재즈 라이브 공연이 있었는데 대중곡을 연주해도 고급진 느낌이었다.
릭스카페는 카사블랑카에 오면 한 번 가볼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있었지만 쌩떽쥐베리가 <야간비행>을 썼던 쁘띠뽕세 카페는 너무 ‘현지화’ 되어서 감흥이 없었다. 가짜 무대인 릭스카페는 흥하는데 진짜 무대인 쁘띠뽕세는 파리만 날리는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모로코기행 2일차, '겉푸속반'의 도시 라바트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의 메디나(올드 시티) 안의 카스바(성채)에 다녀왔다. 뭐랄까? 마분지에 포장된 백자를 본 느낌? ‘겉푸속반’, 겉은 푸석푸석한데 속은 반질반질~ 카사블랑카랑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사실 카사블랑카는 다른 아프리카 도시처럼 많이 산만하다. 우리에게 박힌 이미지는 낭만적이지만 그냥 삶의 도시 그 자체일 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잘 설계된 계획도시라는 느낌이 나는 라바트는 케이프타운과 같은 남아공 도시들을 방불케 할 만큼 정갈하고 예뻤다. 모로코의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특히 구시가지가 예뻤는데, 그래서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작품이 되는데, 하드웨어에 매력을 소프트웨어가 따르지 못해 아쉬웠다. 카페나 펍 그리고 레스토랑은 충분히 발전하지 않아서.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우호적인 모로코 소녀들과 한국어로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 한 컷 찍어 보았다. 대체로 장사꾼들은 우리에게 '니 하오'나 '곤니치와'를 외쳤고 여럿이 모여있는 소녀들은 '안녕하세요'를 외치곤 했다.
모로코기행 3일차, 모험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 탕헤르
“나는 힘을 북돋아 줄 길동무도 없이 홀로 여행을 하였다. 영광스러운 성소들을 찾아가고 싶은 오래 묵은 소중한 충동에 압도되어 내 마음은 흔들렸고, 내 친구들과 단호히 작별하며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 부모님께서 아직 살아계신 데 그분들과 헤어지자니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슬펐고, 나도 부모님도 모두 괴로웠다.
(중략)
사실 알라께 감사를 드리거니와, 현세에서의 나의 욕망, 즉 대지를 여행하려는 욕망은 이미 실현된 셈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 방면에서는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나는 도달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제 남은 것은 내세의 일뿐이다. 그러나 나는 알라의 자비와 관용 속에 낙원에 들어가려는 나의 욕망이 필히 실현되리라는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쓴 이븐 바투타의 고향 탕헤르에 다녀왔다. 이븐 바투타는 마르코폴로, 오도릭, 혜초와 함께 세계 4대 여행서 저자로 꼽힌다. 돋보이는 점은 이들 중 가장 마일리지가 높다는 점. 대략 마르코폴로의 4배 이상 거리를 여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행에서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마르코폴로나 오도릭의 여행기는 기독교적인 시선에서 자신이 여행한 곳의 사람들을 '이교도'로 바라본다. 마치 중화의 시선으로 주변국을 '오랑캐'로 본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던 이븐 바투타는 우리에게 다른 시선을 열어준다.
지브롤터 해협 입구에 있는 탕헤르는 비바람의 도시였다. 라바트의 쨍쨍한 태양과 모래바람을 뚫고 왔는데 케이프 스파르텔에선 태풍만큼 강한 폭풍이 우리를 맞았고 탕헤르 시내에선 폭우가 한 번 더 우릴 반겼다. 그런 바람과 비가 탕헤르를 모로코 최고의 휴양도시로 만들었다니 아이러니다.
탕헤르 메인 시가지는 같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쿠바의 시엔푸에고스를 닮았다. 지금 프랑스에서도 보기 힘든 아르누보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극장이 광장 한가운데서 도시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점도 닮았다.
모로코 권력자와 유럽 부호들의 별장이 즐비한 곳인데, 부촌은 비버리힐스와 닮았다. 사진만으로는 서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이렇게 누린 자들이 많은 도시답게 맛집도 많았다. 모로코식 생선구이집에 갔는데 광어 등 각종 생선을 맛깔나게 구워냈다.
우리가 묵었던 ‘빌라 드 프랑스’는 앙리 마티스가 묵었던 호텔이라는데 격조 있는 곳이었다. 두루 마음에 들었다. 마크 트웨인이나 알렉산드르 뒤마가 창작에 몰두했던 ‘그랑 카페 데 파리스’도 방문해 시가 연기를 피워 보았다. 다음에 탕헤르에 오게 되면 좀 더 오래 머물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