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를 사랑한 입생 로랑과 만수르 호텔의 플렉스
모로코기행 10일 차, ‘아랍프리카’ 여행의 꼭짓점 마라케시
‘아랍프리카’는 내가 만든 신조어다. 아랍+아프리카인데, 아프리카에 속하면서 아랍 문화의 영향권 안에 있는 지역이다. ‘아프리카의 탈을 쓴’ 아랍이랄 수도 있고. 여기에 인종적으로는 흑인도 아랍인도 아닌 베르베르가 주인공이다.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가 여기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마라케시는 그런 아랍프리카의 꼭짓점과 같은 도시다. 베르베르인들의 유목문화와 이슬람문명이 사하라사막과 아틀라스산맥을 넘어 이뤄낸 하나의 경지가 바로 마라케시라고 할 수 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랍과 아프리카의 공동 끝판왕이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이슬람문명이 모로코 특히 마라케시에 있다. 이슬람 국가지만 신앙심이 좀 설렁설렁하고. 정세가 불안하지도 않고. 너무 가난해서 애처로울 지경도 아니고. 여행자를 위한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곳, 그곳이 모로코고 그중에서도 바로 마라케시다.
마라케시의 제마 알프마 광장은 우리가 가진 판타지 속의 아랍 시장을 구현해 준다. 영화에서 익히 보았던. 정말 난장도 그런 난장이 없다. 개난장이다. 하지만 어스름 석양에 여행자들을 혹하기 위한 온갖 기행을 쇼잉 하는 모로코인들의 모습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다.
‘거짓으로 가득 찬 진실’ 제마 알프마를 둘러싼 시장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엔 서유럽 어떤 명품거리보다도 명품이 많다. 다만 가짜일 뿐. 가짜 장애인, 가짜 뮤지션, 가짜 피자(정말 맛없다), 온갖 가짜가 판을 친다. 그 가짜의 향연에서 진짜 삶을 볼 수 있다.
모로코의 가짜 중 으뜸은 모로코 피자다. 모로코엔 어디에나 피자가 있지만 어디에도 피자가 없다. 피자가 아니라 피자의 탈을 쓴 밀가루 누룽지랄까? 기대한 맛이 전혀 안 난다. 전통 음식 식당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이 피자집인데 가장 피해야 할 집이다.
모로코음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간이 안 된 음식과 간이 안 맞는 음식. 그래서 무난하면서 그리 맛있지는 않다. 간이 안 된 음식을 내 간에 맞춰 먹으면 무난하다고 하고 간이 안 맞는 음식이 나오면 별로라고 한다.
모로코기행 11일 차, 모로코를 사랑한 입생 로랑
세상은 포장지 싸움이다. 내용물은 거기서 거기, 모든 가치는 포장이 좌우한다. 가장 화려한 포장지를 사용하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모로코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조렐가에서 꾸민 정원 그리고 입생 로랑 뮤지엄이 모로칸 스타일을 완성했다.
마조렐 정원에서 돋보이는 점은 조연(아니 단역)을 주연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다른 모로코 정원에서 아무도 주연으로 내세우지 않는. 선인장 등 다육식물을 주연으로 쓰고 역시나 방치된 대죽을 정원의 공동 주연으로 활용했다. 이슬람 국가가 신성시하는 수종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벽과 바닥도 마찬가지다. 모로코의 모든 벽과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타일과 기하학적 문양을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타일과 타일 사이의 브리지 역할을 하는 황토가 메인이 되었다.
마조렐 정원을 베르베르 박물관과 입생 로랑 박물관과 묶어서 비싸게 파는데, 억지로라도 한 번은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의 원 매력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권세가의 애첩들이 살던 대저택에도 가 보았다. 애첩은 작은 공간을 혼자 쓰고, 밀려난 다른 부인들은 셋이서 큰 공간을 나눠 쓴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다들 매여 살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모로코는 늘 이슬람과 베르베르 중심의 구도심과 프랑스나 스페인 식민지 시절 조성된 신도심이 나뉘는데, 마라카시 역시 그랬다. 그 대비를 즐기는 것도 모로코 여행의 묘미인 듯.
모로코기행 12일 차, 하룻밤 300만 원 로열 만수르 호텔의 플렉스
1박에 300만 원 하는 모로코 마라케시의 로열 만수르호텔에서 잤다. 낮잠을. ㅋㅋ 일행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예약을 했는데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리조트 단지에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는데 돌아보다 푹신한 의자가 보이기에. 앉아서 음악을 듣다가 살짝 졸았다. ㅋㅋ
만수르호텔 정원을 보며 느낀 점은 역시 지금 부자가 최고구나. 옛날 부자는 한계가 있구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만든, 마라케시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바하리 정원과 프랑스인들의 정원 역량을 보여준 마조렐 정원보다 나았다. 돈의 힘!
만수르호텔의 식사비는 호텔 방값에 비하면 그리 비싸지 않았다. 빅토리아호텔이 방값에 비해 식사비가 저렴하듯이 만수르호텔 식사비도 ‘견딜 만’ 했다. 만수르호텔 방값의 1/5도 안 되는 우리나라 특급호텔 프랑스식당에서 8명이 와인 곁들여 식사를 하면 얼마나 나올까? 여기서는 감당할만했다.
만수르는 ’리아드‘라는 모로코식 스위트룸으로 꾸민 호텔이다. 한두 명이 여러 명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한두 명을 위해 봉사하는 곳,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그저 불편할 뿐인 친절을 한나절 동안 경험해 보았다.
이날 오후에 모로코 현대미술관에 가보려다 못 갔는데 만수르호텔이 그대로 현대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적인 모로코의 미감을 프랑스의 현대 감성으로 재현한 곳, 이곳이 바로 현대미술관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모로코의 ’일장추몽‘에서 깨어났다.
주)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모로코기행은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디스 이즈 아프리카’와 함께 기획했습니다. 모로코기행 시즌2는 내년 4월6일~19일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