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욕지도에 갔을 때 일이다. 유명한 짬뽕집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가지 못했다. 두 번이나 가보았는데 두 번 다 문이 닫혀 있었다. 욕지도에 함께 갔던 지인은 배에서 내렸을 때 사람들이 이 짬뽕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갔다고 했다(맛집이라 늦게 가면 못 먹을 것 같아서). 그럴 일인가 싶었다.
욕지도 지인에게 짬뽕집 근처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어르신 내외가 하는 식당을 한 곳 추천해 주었다. 너무나 맛있었다. 짬뽕집에 두 번째로 허탕 쳤을 때(문 닫는 날이 주인장 맘대로라고)도 역시 그 집에 갔는데 그때도 좋았다. 해물탕과 해초비빔밥을 먹었는데 '이것이 남해의 맛'이라 할만한 인상적인 맛이었다. 다만 어르신 두 분이 하시느라 음식이 좀 더디 나왔다.
전국적으로 3대 짬뽕이니 4대 떡볶이니 하는 것들이 난립한다. 나는 그런 것은 '가짜뉴스'가 아니라 '각자뉴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공신력을 인정한 곳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임의로 정한 것들이니. 그렇게 손꼽히는 곳을 두루 다녀본 후 내 결론은 "일반적인 음식은 서울이 젤 맛있다"라는 것이었다. 현지의 제철 식자재를 활용해 현지 방식으로 하는 집이 최고다.
작년에 강원도에 갔을 때 후배를 따라 그런 '몇 대 짬뽕'의 주방장이 나와서 한다는 짬뽕집에 간 적이 있다. 사람이 별로 없던 것에 대해 후배는 "평소에는 줄을 한참 서야 하는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한적한 것 같다"라고 했는데 먹어본 후 내 결론은 그냥 맛이 별로여서 그렇다는 것.
중국에서는 가짜 보이차를 '방품(모방품)'이라고 한다. 가짜 찻잎으로 만든 차가 아니라 가치를 속인 차라는 것이다. 나는 난립하는 맛집 정보가 그렇다고 본다. '가짜뉴스'는 아니지만 '각자뉴스'의 산물일 뿐이다. '수고하고 짐 진 도시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이 각자뉴스를 잘 추려내야 한다. 앞의 사례처럼 전국 맛집 정보에 20대 입맛이 과잉 대표되었기 때문이다.
20대의 입맛도 존중한다. 우리도 그때는 그게 맛있었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것은 다양한 것을 맛보면서 일정한 궤적을 그리게 되어 있다. 짜장면이 처음에 맛있고 그 뒤에 탕수육이 맛있다가 나중에 오항장육도 맛있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른의 여행을 위해서는 이들의 입맛 궤적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야 한다.
감자탕을 예로 들어보자. 젊었을 때는 감자탕을 먹을 때 대부분 살이 잔뜩 붙어 있는 뼈다귀에 집중한다. 그러다가 뼈다귀보다 감자를 먼저 먹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면 시래기만 슬쩍 건져 먹다가 마지막엔 국물만 좀 떠먹고 말곤 한다. 지금 음식 정보는 전부 감자탕에 들어있는 뼈다귀에 살이 얼마나 붙었느냐만 따지고 있는 셈이다. 음식 정보에 세대 확장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입맛은 세대마다 감수성이 다르다. ‘삼선 맛집’이란 게 있다(내가 만들어 낸 말이다). 마요네즈 한 줄, 케첩 한 줄, 데리야키소스 한 줄, 이것만 그으면 맛있는 줄 아는 초딩 입맛. 그런 단계에 있는 사람을 위한 맛집이 전세대를 대표하지 못한다. 특히 우리와 같은 아재들에게는 상극이다. 정보의 비대칭과 20대 입맛의 과잉 대표로 인해서 아재들은 부지기수로 헛걸음을 하곤 한다. 귀한 시간 내서 지방까지 가서 이런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은 정말 아쉽다. 아재들을 위한 맛집 정보의 재정렬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맛있다/맛없다 구분하는 것은 때로 ‘먹어봤다/안 먹어봤다’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안 먹어본 맛을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젊은 미식가의 평가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평가는 일부이고 또한 초기인데 이것이 전부인양 호도될 수 있다. 맛의 지평을 넓힌 평가가 필요하다.
국도를 따라서 보면 몇 년 전까지 수타 짜장면집이 몇 km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그 집들이 요즘은 짬뽕집으로 바뀌고 있다. 다들 ‘전국 몇 대 짬뽕’ 타이틀을 걸고 말이다. 그들의 무기는 불맛을 낸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재료를 푸짐하게 쓴 정도. 그런데 음식에 불맛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국물이 텁텁해질 우려가 있다. 재료가 풍부한 것도 미덕만은 아니다. 그 재료로 다른 맛난 것을 만들 수 있는데 짬뽕 국물에 모두 튜닝해 버린 것이니.
얼마 전부터는 한 방송프로그램이 방영된 뒤에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이라는 장르가 생겨났다. 이것 역시 오버의 도가니탕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은 한마디로 거기서 거기다. 제한된 시간 내에 제한된 식자재로 최대의 가성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찾아와서 먹을 정도의 음식은 아니다(아재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말이다). 그 시간에 거기를 지나가야 하는 사람에게 차선 혹은 차악일 뿐이다.
사실 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조금만 걸어 나가도 그 지역의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아니면 IC를 잠깐만 빠져나와서 들를 수 있는 맛집들도 많다. 현지 제철 식자재로 현지 방식으로 요리한 곳, 그런 곳이라면 일부러 찾아갈 만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보는 휴게소 중심으로 구성된다. 바쁜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정보일 수 있지만 한갓진 여행자들에게는 다른 정보도 필요하다.
제목이 좀 과한데, 정확히는 ‘청년들의 맛집 정보에 속지 않는 법’ 정도가 맞을 텐데, 사실 청년들은 속인 게 없다. 중년들이 속은 것이다. 왜? 게을러서. 그냥 검색 좀 해보고 상단에 나오는 곳 가서 영혼 없이 줄 서있다 보니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올해 여러 루트로 미식기행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래서 과소 대표된 우리 아재들의 입맛에 맞는 집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