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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12. 2021

세계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BTS가 위대한 이유

“방탄소년단이 백남준의 ‘예술적 예언’을 실행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다. 혁명적인 것은 욕망이지 축제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이다. 영화철학자인 이지영 세종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방탄소년단 현상(이하 방탄 현상)’을 이해하는 데 들뢰즈가 말한 욕망과 혁명의 함수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019년 여름 ‘Beyond and Behind BTS’라는 제목으로 ‘BTS 인사이트 포럼’이 열렸다. 이지영 교수를 비롯해 신형철 조선대 교수, 진영선 고려대 명예교수 그리고 영국에서 온 콜레트 발메인 킹스턴 대학 교수가 방탄 현상의 의미를 학문적으로 논증했다. 이들은 방탄 현상이 유행에 대한 이해를 넘어 최첨단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점을 다양한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진지하게 이뤄진 전통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고 난 뒤에야 관련 학회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 BTS 인사이트 포럼은 대중문화 현상을 철학의 영역까지 끌어올려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포럼에 참가한 콜레트 발메인 교수는 이듬해 1월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관련 포럼을 주도했다.       


 

신형철 교수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훌륭한 시”     


신형철 교수는 방탄소년단을 힙합 뮤지션 에미넴과 비교하며 그들이 시대정신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설명했다. 진영선 명예교수는 백남준의 예술적 예언을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실행하는지 논증했다. 발메인 교수는 방탄소년단에서 대안적 남성성을 발견했다며 치켜세웠다. 그들이 ‘사내아이다움’에서 벗어나려는 모습과 성장통을 겪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면서 기존의 남성성 신화를 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형철 교수는 “예술은 한 문화의 양식을 현시하고 명료화하며 재설정한다”라는 하이데거의 예술 존재론을 바탕으로 방탄소년단이 우리 시대 대중문화를 어떻게 현시하고 명료화하며 재설정하는지 우드스톡 록페스티벌과 힙합 뮤지션 에미넴을 비교해 설명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우드스톡 록페스티벌은 서구 자본주의에 전복적인 태도로 시대정신을 포착했다. 에미넴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의 자기혐오를 반영하는 것으로 시대정신을 구현했다. 이들과 비교해보면 방탄소년단도 ‘져도 된다’는 메시지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인 신 교수는 〈뉴스위크〉가 ‘BTS 만트라(주문)’라고 표현한 “너 자신에 충실하라. 너 자신에 대해 말하라. 너 자신을 사랑하라(Be yourself, Speak yourself, Love yourself)”라는 방탄소년단의 메시지가 일본 신세대 작가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인주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나’ 중에 자신에게 맞는 ‘나’를 인정하고 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방탄소년단 노래 가사 역시 훌륭한 시라고 칭찬했다.


     

진영선 교수 “방탄소년단이 백남준의 ‘예술적 예언’을 실행했다”     


비디오아티스트 고 백남준에 대한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진영선 고려대 명예교수는 백남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예술철학 4가지를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물리적 흐름 바꾸기’ ‘소통으로서의 예술’ ‘정보 고속도로’ ‘기술에 마음을 부여하기’ 등의 공통점이 있다며 방탄소년단을 통해 백남준의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지영 교수는 질 들뢰즈의 리좀(Rhizome) 개념을 가져와 ‘방탄 현상’을 ‘리좀적 혁명’이라고 명명했다. 리좀은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계질서 없이 끝없이 다른 것들과 연결 접속되어 생성하는 네트워크 구조를 뜻한다. 이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ARMY)’가 구성되고 움직이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한 방탄소년단과 팬이 교감하며 내적 친밀성을 높이는 방식인 ‘네트워크 이미지’의 개념을 소개했다.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 이미지를 구성하는 소품·배경·의상·행동은 멤버의 말이나 글 그리고 이전 작품 등에 힌트가 있다. 또 모티브가 되는 소설, 영화, 그림이 있다. 이런 내용을 전부 파악해야 전체 의미를 알 수 있다.



이지영 교수 “‘방탄 현상’은 질 들뢰즈가 말한 ‘리좀적 혁명’”     


방탄소년단 팬은 4개 층위에서 콘텐츠를 즐긴다. 일단 브이앱에서 멤버들이 올리는 일상생활 동영상을 통해 자연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콘텐츠를 바탕으로 노래 가사 등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접하고 방탄소년단이 행하는 퍼포먼스의 의상, 안무, 소품, 배경 등에 함축된 맥락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소설, 영화, 그림 등과 연계되어 훨씬 더 방대한 ‘방탄 유니버스(우주)’를 보게 된다. 이 방대한 우주에서 아미는 프로파일러처럼 숨겨진 의미를 채굴해낸다. 팬들은 방탄소년단을 완성체로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응원한다. ‘방탄 유니버스’는 평론가들이 음악, 특히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쉽게 평하지 못하는 이유다. 은유와 환유의 대상을 모르는 문학평론가가 시를 제대로 평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복잡하고 방대한 ‘방탄 유니버스’에서 중심이 되는 공전의 축이 있다. 바로 멤버들의 자기 고백이다. 방탄소년단을 만든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며 그들을 힐링을 위한 아티스트로 키웠다. 멤버들은 쉽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처를 바탕으로 방탄소년단과 팬들 사이에 생성된 내적 친밀감이 ‘방탄 유니버스’를 이해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이지영 교수는 지적했다.       


방탄 현상에서 주목할 것은 모든 뮤지션들이 부러워할 만한 ‘건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들도 주목하는 부분이다.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와 실천이 현실 세계를 변화시켜 이 세계를 지배하는 수직적 질서를 깨는 수평적 연대를 만들어냈고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그 실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스타가 출현한다. 예술에 대한 논쟁도 일어난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그저 예술을 둘러싼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변혁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 변혁의 정점에 방탄소년단이 있다. 포럼에서 학자들이 강조한 점은 아이돌 가수에 대한 열광이 사회·문화적 현상이자 정치적이고도 미학적인 사태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극우 포퓰리즘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아미 팬덤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지향하는 뚜렷한 흐름이 포착된다. 이와 관련해 〈BTS와 아미 컬처〉를 쓴 이지행 박사는 ‘신념의 공동체’보다 ‘취향의 공동체’가 강해지고 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더 이상 혁명을 꿈꿀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아미를 통해 일상의 혁명을 경험하면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함께 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혁명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영 교수는 “스파이 출신이었던 레슬리 우드헤드는 〈비틀스는 어떻게 크렘린을 뒤흔들었는가〉 책에서 비틀스 음악이 어떻게 소비에트연합의 붕괴를 이끌었는지 논증했다. 아미는 팬덤 활동을 통해 생활 세계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자연스럽게 세계 시민권 교육이 이뤄지는 셈이다. 만약 조사를 해본다면 아미의 정치 성향은 반트럼프, 반브렉시트, 반자유한국당으로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방탄 현상은 어디까지 갈까? 다시 질 들뢰즈의 욕망과 혁명의 함수로 돌아가 보자. 들뢰즈는 “어떤 사회라도 참된 욕망의 정립을 허용할 수 있게 되면 그 착취·예속·위계의 구조가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 팬덤 활동을 하며 생활 세계의 소소한 혁명을 경험했던 아미는 당분간, 아니 영원히 활동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미는 방탄소년단이 잠시 유행하다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몇십 년이 지나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방탄 현상이라는 대중문화의 전설을 넘어 방탄소년단 자체가 전설이 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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