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될 수 없는 연출도시, 평양 트루먼쇼

여행감독의 북한여행 큐레이션 제9편

by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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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를 관광하는 동안 쌀 배급을 받기 위해 길게 줄 지어 선 것도 보았고, 무단 횡단하는 시민들을 무시로 보았고, 전차선이 끊어진 것도 두세 번 보았고, 심지어 자전거를 세워놓고 주먹다짐하며 싸우는 모습까지 보았다. 여기저기 수리하고 고치는 모습을 특히 자주 보았다. 어쨌든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2008년 10월18일~22일, 4박5일동안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측 언론본부 대표단(단장 : 김경호)의 일원으로 평양에 다녀왔니다. 남측 대표단에는 한국기자협회 PD연합회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 유관단체가 속해 있었는데 나는 언론노조 소속으로 다녀왔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언론 분야에서 이행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협력, 교류를 통한 통일에 기여한다’라는 것이 6.15 남측위원회 언론본부의 소명이었다. 이 언론인 방북단의 가장 큰 목적은 남북 언론 기사 교류에 대한 합의였다. 북측 언론본부와 제4차 남북언론인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고 기사 교류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 합의서를 바탕으로 북한 관련 보도에 오류가 있을 경우 북측은 남측 언론본부를 통해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무효화되었다.


우리를 맞아준 사람은 최칠남 조선기자동맹 위원장 겸 북측 언론분과위원장이었다. 그는 전 로동신문 주필인데, 북한에서 주필은 우리로 치면 언론사 사장에 해당한다. 당 서열이 42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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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는 언론인 방북 대표단의 일원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 나는 '블로거의 눈'으로 북을 보고 와서 누리꾼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평양으로 출발하면서 동행한 언론계 선배들에게 '저는 블로거 자격으로 갑니다'라고 말했고 북측 언론본부와 만나서도 시사IN 기자라고 소개하고 덧붙여 '인터넷 블로그 <고재열의 독설닷컴> 운영자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북한에 다녀온 후 블로거의 눈으로 본 관찰기, '블로거가 본 평양'을 연재했다. 마침 ‘김정일 중병설’을 넘어 ‘김정일 사망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방북한 상황이어서 더 주의 깊게 보았다. 처음 평양에 들어갈 때만 해도 혹시 방북 기간에 북측에 중대 상황이 발생해서 ‘내가 역사의 현장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기자 특유의 긴장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정보가 통제된 북한에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같이 간 언론인들끼리 “김정일이 사망해도 오히려 우리만 모를 수 있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양에 도착해서 일정을 따라보니 매우 폐쇄적이었다. 퇴근하듯 호텔에 돌아오면 나갈 수 없었다. 호텔이 대동강 한가운데 있는 양각도(여의도 절반 정도 크기인 듯)에 있어서 시내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호텔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야 북측 언론분과위원회 사람들인데 이들이 확인해줄 리가 만무했다. 호텔에서 일하는 접대원 동무들도 모두 훈련된 사람들이라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다.


시내 일정을 나가도 대민접촉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양시민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분위기로 감지할 수도 있겠지만 평양 중심가나 방북자들이 도는 주요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평양시민들은 동원된 사람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역시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인터넷과 전화 사용도 안되었다. 체제 선전적인 북한 방송과 로동신문을 보는 것 말고는 북한 내부 소식을 접할 수가 없었다. 북측 내부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평양 시민들은 한가로웠다. 만경대 김일성 생가에서 마주친 북한 학생들과 가족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가족 중에 할아버지는 양복에 훈장을 달고 있었다. 만경대 구내 전시관 안에서 마주친 평양 의학대학 학생들은 어려 보였다. 북한은 소학교가 4년 과정이라 대학 1학년이 남한의 고등학교 2학년 나이라 그런다고 했다.


만경대 생가 앞 김일성 기념비에 헌화하는 북한 가족을 보았는데 여성은 한복을 입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중요한 자리에서 여성들은 주로 한복을 입는데 남성들은 한복을 입지 않는다. 한복을 입는데 북한 여성들도 핸드백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그 핸드백의 모양과 색은 상당히 다채로웠다.


을밀대 아래 잔디밭에서는 여흥을 즐기고 있는 북한 어르신들을 보았다. 북한에서는 노인을 '늙은이'라고 부르는데 '늙은이'라는 말은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니라 남측의 '젊은이'라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노인들의 복장이 우리가 을밀대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달랐다.


을밀대 올라갈 때는 한복을 입은 ‘늙은이’가 없었는데 내려올 때는 여러 명 나타났다. 우리 안내자가 이들과 뭔가 이야기를 하고 온 후에 이뤄진 일이다. 아마 우리 안내자가 ‘남측에서 손님들이 왔는데 좀 챙겨 입으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냈던 것 같다. 어쨌든 노인들이 춤을 추며 노는 모습을 보고 북측에 비상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주체탑 아래에서 만난 부녀는 우리를 위해 포즈를 취해 주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피하곤 했는데 이들은 포즈를 여러 번 취해 주었다. 을밀대의 ‘평화로운 한복 설정’처럼 주체탑의 ‘평화로운 북한 가정’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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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시내에서는 이들 부녀처럼 부모와 자식이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제법 커도 부모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다니곤 했다. 의외였다. 어렸을 때부터 탁아소에서 길러서 자립심이 더 강할 것 같은데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을밀대에서는 북한의 연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젊은 부부일 수도 있고). 양산을 쓴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체탑 밑에서는 북한의 신혼부부를 보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위해 왔다고 했다. 만수대 언덕 위에 김일성 기념비 근처에 가면 이런 신혼부부를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북한 사람들에게 만수대 언덕은 좋은 일이 있을 때 보고하러 오는 곳인 듯싶었다.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고 오는 북한군 간부들 모습을 보았는데 일행이 그중에 북한군 대장도 있었다고 했다. 선군정치를 펼치는 곳이라 그런지 군복 입은 사람들의 방문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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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만 주체탑 아래가 인스타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주체탑이 대동강변에 있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는 평양시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건너편 인민대학습당을 배경으로 찍으면 운치가 있다. 주체탑 맞은편 도로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북측 청소년들도 보았다.


방북 기간 동안 보았던 평양 시민들은 대체로 여유로웠다. 북한 ‘력사박물관’ 앞에서 관람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특히 활기찼다. 얼굴을 숙이는 학생, 돌리는 학생

미소 짓는 학생, 빤히 쳐다보며 오히려 우리를 관찰하는 학생 등등, 반응이 다양했다.


김일성 광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닥에 그려진 흰색 표시들이었다. 건국 60주년 기념행사 당시에 사열을 위해 그려 놓은 것 같았다. 김일성광장에서 사열하는 모습을 보면 어찌 그리 줄을 잘 맞추나 하고 감탄했었는데, 나름 팁이 있었다.


블로그에 평양 모습을 올렸을 때 ‘연출된 사진 같다’는 댓글이 많았다. 분명 평양에는 연출된 모습이라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평양은 연출된 모습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가 아니다. 평양시민도 우리를 의식해 연출된 모습이나 보여줄 만큼 한가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일부 관광 포인트에 외부자들의 카메라를 의식한 연출이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사람이 손님을 맞는 과정에서 궁색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옆집에서 물건 한 두 가지 빌려서 갖다 놓는 정도로 이해했다. 북한 사람들도 스스로 '고난의 행군을 거쳤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움을 솔직히 말한다. 담백했던 그들이 그립다.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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