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검정고양이 후기

by 바이즈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녀석을 마주한 이상한 시대에, 마치 전쟁을 겪고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어디를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전례 없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리고 주변의 많은 지인들도 이런 이상한 시절을 보내며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모호합니다.

또한 ‘나’와 너무나도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명료하게 거리를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스트레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교포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말인 '압박과 긴장'으로 자연스럽게 개념을 잡을 수 있도록 설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극명한 대비를 위해, ‘긴장’은 ‘검은색’으로, ‘이완’은 ‘흰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긴장’을 ‘수컷’으로 ‘이완’을 ‘암컷’으로 표현하여,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음양의 관계이며, 실상에서 해와 달, 낮과 밤, 남성과 여성, 극과 극의 대비를 상징하게 설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완’이라는 고양이의 어릴 적 이름이 '압박'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실상에서 ‘압박, 긴장’은 ‘이완’의 동전의 뒷 면이며,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관계임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보통 ‘긴장’의 해결책은 ‘이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극단일 뿐 과도한 긴장의 반대급부인 과도한 이완도 역시 잠시 동안의 안도감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해결책으로 '중도'라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습니다. 그러나 중도의 본의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중도를 마치 극과 극의 중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남성과 여성의 젠더 갈등이 그 중간인 '중성'이 된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도는 두 극단을 통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긴장과 이완' 두 가지를 통합하여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남성과 여성의 젠더 갈등은 ‘사람, 인간, 인류’라는 통합적 수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성이 없다면, 남성도 있을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부재는 다른 하나 역시 부재할 수밖에 없게 하며, 그것은 둘 모두의 소멸로 귀결될 뿐입니다.


사랑은 중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사랑해'라는 우리말은 아름답습니다. 영어의 ‘I love you’와는 다릅니다.


'사랑해!'


이 말속에는 'I=나'도 없고, 'You=너'도 없습니다. 그 둘은 이미 통합되어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사랑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랑은 중도를 실현하기 위한, 통합의 위한 촉매제의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에 긴장과 이완은 사랑으로 통합되어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검정과 흰색이 섞여서 회색이 되는 묘사로 표현됩니다. 회색에 검정과 흰색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고요’는 ‘긴장과 이완’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 통합을 묘사하는 언어입니다.


저는 냥이 집사입니다. 고양이를 관찰하다 보면, 그들은 '고요' 속에 있습니다. 그러다 움직이기 직전에 이완의 상징인 기지개를 무지개처럼 켭니다. 또한 고요 속에 있다가, 귀를 뒤집어 완전한 긴장인 '하악질'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고양이들은 다시 중도인 '고요'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회색 고양이 '고요'를 잠시 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요'입니다. 그리고 그 고요에서 '긴장과 이완'이 무수히 일어나고 또 사라집니다. 또다시 우리는 '고요'가 됩니다.



【후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