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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Mar 31. 2022

세번의 행운 3

비나이다 비나이다

1.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어머니는 한 참 동안 빌고 또 빌었고,

그리고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2.

2005년.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타기 전, 귀 아래에 동그란 멀미약을 붙였다. 혹시 멀미할 수도 있으니까.


하늘에서 내려보는 세상은 신기했다.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았다.


3.

처음 중국을 보았다.


하늘도 회색, 주변이 온통 회색으로 보였다.

바람 속에서 '모래' 냄새가 났다.


유학생 기숙사에 짐을 풀고,

학생비자를 신청했고,

중국어 레벨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레벨은 A부터 F까지 있었고,

나를 인터뷰한 중국인 선생님은 나에게 'D'라고 했다.


4.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동안 수업을 했고, 나머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유학생 숙소는 중어중문과 친구와 함께 2인실에 배정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밤늦게까지 중국어를 공부했다.


마음이 급했다. 빨리 중국어를 잘하고 싶었다.


5.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황당한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교환학생은 전액 장학금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2학기 등록금 150만 원을 내야 한다는 통보였다.


위기였다.


돈을 내지 못하면 유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국제전화카드를 구입해서 친구와 선배형, 그리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150만 원.... 내야 한대."


어머니와 통화한 다음날 등록금을 낼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6.

2학기가 시작되었고,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다.


생활비가 부족했다.


다행히 중국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돈을 벌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중국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다.


중국에서 유학한 1년은 내 인생에서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7.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왜 지금 '찜질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내가 유학을 떠나기 전, 어머니는 500만 원의 목돈을 모아 전통시장 안에 세를 얻어 옷가게를 차렸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 '찜질방'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1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을 구할 곳이 없었어. 그래서 사발에 물을 한 그릇 떠놓고 빌었어.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제발 150만 원만 생기게 해 주세요.

제발 150만 원만.....


한 참을 빌다가 잠이 들었어.


잠에서 깼는데,

비가 갑자기 막 쏟아지는 거야.


가게의 천청이 새는 건지,

비가 막 들이쳐서 가게의 바닥까지 물이 차오르는 거야.


깜짝 놀라서 가게 밖으로 나와서 봤는데,


시장 안의 다른 가게는 다 멀쩡한데 우리 가게만 물이 새서 옷들이 모두 젖었어.

팔아야 되는 새 옷들이 전부 못쓰게 돼버렸어.


가게를 세준 주인에게 찾아가서,

150만 원만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냉큼 주더라니깐.


그래서 니 등록금을 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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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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