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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즈 Mar 30. 2022

김밥

군수담당관님

1.

2001년 11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뺑뺑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손의 선택’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지킨다는 수방사에 배정됐다.


군사기밀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난 북한산 밑에 있는 대대 규모 부대에 자대 배치됐다.


자대 배치 다음날부터 군수과라고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쓰인 푯말이 있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난 5, 7, 9종 계원이었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총기, 탄약, 장비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사무실에는 군수담당관, 보급지원관, 기간병 3명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이 일했다. 보급지원관은 나보다 한 살 많은 하사였고, 군수담당관은 딱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한 상사였다.


선임들은 모두 업무로 인해 외출했고, 나만 사무실에 간부들과 남아있었다.


내 허리춤에서 군번줄에 매달려 있어야 할 인식표가 달그락거렸다. 군복 상의를 건빵바지에서 빼내자 인식표가 바닥에 ‘탁’하고 떨어졌다.


이상하게도 군번줄이 사라졌다.


“군번줄 없으면 너 선임들한테 갈굼 당할 텐데 어쩌냐?”라며 보급지원관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난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등병이 군번줄을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절대 걸리면 안 된다.’고 내면의 목소리가 말했다.


건빵바지 주머니에 인식표가 달그락거리지 않게 휴지에 싸서 넣었다. 제발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기만 빌었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식판을 물에 씻고 있었다. 갑자기 군수담당관님이 내게 걸어오시더니, 사제가 분명한 군번줄을 내게 내밀었다.


난 자동반사적으로 “이병 000,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경례했다.


2.

군수담당관님은 성품이 온화했다. 기간병들이 실수를 해도 쉽게 화를 내지 않으셨고 잘못된 부분을 조용히 한 마디로 지적해주셨다. 말많기로 소문난 타 중대 선임들도 군수담당관님에 대해서는 어떤 험담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탄약대대에 탄약을 수령하기 위해 군용 트럭을 타고 갔다.


아버지 군번의 직속 선임, 상병 말호봉의 운전병 선임, 군수담당관님, 그리고 나.


한 참을 운전해서 탄약대대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있었다. 탄약보관 창고 옆에 잠시 정차했고, 군수담당관님이 자신의 백에서 검정 봉지 꾸러미를 꺼냈다.


김밥이었다.


김밥용 햄, 우엉, 계란, 당근, 단무지, 시금치가 들어간 전형적으로 집에서 만 김밥이었다.


직속 선임은 김밥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한 마디 했다.


"참 사람이 짜다. 밖에서 짜장면, 짬뽕 사주면 얼마나 좋냐? 돈 아끼려고 김밥을 싸왔네."


김밥에 불만이던 직속 선임은 얼마 후 전역했고, 몇 달에 한 번 탄약대대에 탄약을 수령하는 업무는 계속이었다.


그때마다 매 번 군수담당관님은 검정 봉지를 꺼냈고, 어김없이 김밥이 있었다.


3.

국방부의 시계는 어찌나 천천히 흐르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지만, 결국 난 병장이 되었다.


탄약대대에 탄약을 수령하러 가는 날. 군수담당관님이 운전병에게 말했다.


"탄약대대 가기 전에 근처 중국집에 들러 점심 먹고 가자."


당시 상병이었던 내 후임 운전병은 입이 귀에 걸린 큰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했다.


짜장면과 짬뽕이 나왔다. 맛있게 짜장면과 짬뽕을 먹다가 내가 군수담당관님께 물었다.


"군수담당관님, 오늘은 사모님께서 김밥을 싸주지 않으셨나 봅니다."


군수담당관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오늘 좀 늦게 일어나서 못 싼 거다."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그럼 여태껏 군수담당관님이 직접 김밥을 싸셨던 겁니까?"


군수담당관님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새벽에 일어나서 내가 싼 거다. 니들 집밥 먹이려고."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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